들기름 막국수인 줄 알았더니만

-464

by 문득

난 저거 썩 좋은지 모르겠더라 하는 물건 중에 들기름이 있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도 그랬다. 몇 년 전인가 텔레비전에서 들기름에 한 계란 프라이가 방송을 타서 대대적으로 붐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꽤나 혹했던지 그는 별로 싸지도 않은 들기름을 긴히 한 병 사 오기까지 해서 그걸로 프라이를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그저 그런' 정도의 맛이어서 둘 다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 밥을 다 먹어갈 때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너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난 솔직히 들기름 별로 맛있는 줄 모르겠더라고 말했고 그건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들기름 막국수부터 시작해서 온갖 들기름이 이렇게나 각광받는 세상에 우리 입맛은 도대체 왜 이런 걸까, 나야 또 나라는데 당신은 입맛도 꽤 까다롭고 맛있는 것도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런지를 한참이나 이야기했다. 그와 나에게는 어려서부터 들기름 들어간 음식을 별로 먹어보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래서 아무래도 직관적으로 맛있는 향이 나는 참기름에 비해 그 특유의 향에 적응을 하지 못해 메리트를 썩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다소 흐리멍덩한 결론에 다다랐다. 뭐 이런 문제가 대개 그렇듯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물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우리는 '맛있는 들기름 막국수'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몇 번을 사 먹어보거나 제품으로 나온 것을 이렇게 저렇게 끓여 먹어보기도 했지만 늘 그때마다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도 같다. 우리는 들기름이랑 좀 안 맞는가 보다, 하고.


연휴 전 한 소셜 커머스에서 들기름 막국수 2인분을 4천 원도 채 안 되는 가격에 판다고 올라온 것을 보고 홀린 듯이 사놓고는 잊고 있었다. 연휴가 끝나고 이제 내 배송차례가 되었던지 오늘 배송이 왔는데, 배송이 온 것은 들기름 막국수가 아니라 비빔 막국수였다. 오배송인가 생각했지만 주문한 내역을 보니 내가 비빔 막국수로 주문을 한 게 맞았다. 아마 그때도 들기름 막국수라는 말에 혹해서 들어갔다가(들기름 막국수는 생각보다 가격이 그리 싸진 않다) 나 들기름 별로 안 좋아하지 않던가 하는 생각에 한참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비빔 막국수를 주문했던 것도 같다. 이래서야 늘 끓여 먹는 비빔면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은 생각이 아주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비빔면은 비빔면이고 비빔 막국수는 비빔 막국수지 하고 속 편하게 넘어가기로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툴툴거려 봐야 내 기분만 상하겠기에.


마침 냉동실 속에는 지난번에 사다 놓고 안 먹은 대패삼겹살이 좀 있으니 그걸 구워다 같이 먹으면, 조만간 날이 풀리고 입맛 없는 날 하루 정도는 끼니를 때우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저번에 통목살을 사다 구워 먹어 보니 역시 고기의 식감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대패 삼겹살 따위와는 다른 맛이 있던데, 명색 비빔면도 아닌 비빔 막국수라면 그 정도 대접은 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비빔 막국수도 그가 있었다면 한 번 먹고 치웠을 텐데 나는 두 번을 먹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걸 보니 정말로 그가 훌쩍 떠난 날이 다가오긴 하는 모양이다.


757b9d71-c83d-4f4c-ad62-b7e920fdf6c5.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봉안당의 프리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