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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번이 조금 지나 그만 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던 일은 대충 다 마무리했고 30분쯤 전 전기장판도 딱 좋은 온도로 켜 두었으니 이제 옷을 갈아입고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기만 하면 될 참이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오늘 하루도 또 어찌어찌 무사히 살아냈구나 하던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띠딩 하는 경고음이 울리더니 PC 하단에 인터넷 연결이 해제되었다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아 또 왜. 처음엔 꼭 그 정도의 반응일 뿐이었다. 컴퓨터를 오래 켜 놓다 보면 가끔 이럴 때가 있고 그럴 땐 그냥 재부팅을 한 번 하면 대개는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래도 안 되면 공유기를 물려놓은 셋탑박스의 전원을 한 번 껐다 켜면 대개 해결된다.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재부팅을 해도 여전히 인터넷 연결이 해제되었다는 아이콘이 우측 하단에 떠 있는 걸 보고 툴툴거리며 셋탑박스의 전원을 한번 껐다 켜러 갔다. 그랬더니 셋탑박스의 전원 램프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텔레비전을 켜 봤다. 방송 시간이 아닌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 화면 자체가 죽어 있었다. 셋탑박스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셋탑박스의 전원선 아답터가 빠졌거나, 별로 흔한 일은 아니지만 수명이 다 되어 작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모양인가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그거였다. 우리 집 셋탑박스는 텔레비전 장식장 안에 들어있고 그 아답터는 당연히 장식장 뒤에 가려져 있는 코드에 꽂힌 멀티탭에 물려 있다. 이 멀티탭에 물려있는 것들은 어지간해서 끄고 켜고 할 일이 없는 것들이라(텔레비전이라든가 셋탑박스, 공유기 등) 죄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장식장 뒤로 몰아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온갖 용을 다 써가며 텔레비전 장식장을 조금 앞으로 끌어내고 그 뒤에 처박힌 멀티탭을 끄집어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셋탑박스의 아답터 선인지를 한참 더듬거려 보다가 짜증이 왈칵 났다. 워낙에 너저분한 거라고는 눈 뜨고 못 보는 성격인 그가 이런 멀티탭과 온갖 전원선들이 몰려 있는 곳은 죄다 선을 정리해 요즘 핫한 그 케이블 타이까지 동원해 가며 두 번 세 번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어찌나 야무지게 묶어 놓았던지 어댑터 선 하나를 빼내려고 콧잔등에 바싹 땀이 밸 정도로 용을 써야 했다. 이 신새벽에 이게 무슨 난리인가 하는 생각에 도대체 뭐 먹고살 일 났다고 눈에도 안 보이는 이런 걸 이렇게 두 번 세 번 묶어 놓느냐고 듣지도 못할 사람에게 한참이나 지청구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알아낸 바 문제는 아답터 선이 아니라 멀티탭 코드 자체가 벽에서 빠진 것이었다. 멀티탭을 다시 단단히 꽂으니 셋탑박스의 전원은 멀쩡하게 들어왔고 집안의 인터넷을 쓰는 모든 기구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막 자려던 참에 때아닌 실랑이를 벌인 내 신경은 완전히 각성해 버려서, 나는 어제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그러면서 내내 생각했다. 내내 옆에서 저 선들 정리했다 풀어줬다 할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야무지게 두 번 세 번 묶어놓고 살았느냐고.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그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