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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로 갖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 세상 모든 것의 '명칭'이 적혀있는 사전이다. 브런치에 신변잡기에 가까운 편한 글을 끄적거릴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잘 하지 못하는데 업무 때문에 만지는 글이나 '내 글'을 쓰다 보면 아니 이걸 지칭하는 한두 단어짜리 '명칭'이 분명 있을 텐데 그게 도대체 뭔가에 발목이 잡혀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손바닥과 손목이 연결되는, 그러니까 심폐소생술을 할 때 가슴을 직접 압박하는 그 부분을 뭐라고 하는가? 정답은 '손꿈치'다. 발의 발꿈치에 해당하는 손의 부위라 해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초밥을 먹을 때 함께 들어있는 얇은 비닐로 만든 초록색 풀을 뭐라고 하는가? 정답은 '바란(バラン)'이다. 우리말로는 '인조대잎'이라고 풀어서 쓰기도 한다. 시력검사 표에 그려져 있는 한쪽이 트여있는 원 모양의 고리를 뭐라고 하는가? 정답은 '란돌트 고리'다. 뭐 이런 식이다. 어딘가에는 다 제 이름이 있을 사물인데 그 이름을 알지 못해서 온갖 문구를 들이부어가며 설명을 하고 있자면 글이 그지없이 '없어' 보이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어제는 아침부터 왼손 엄지손가락 아랫부분의 살점이 무지근하게 아파서 하루종일 인상을 쓰고 있었다. 물건을 쥐거나 할 때 긴장을 많이 하게 되는 부분이고 특히나 밤에 자리에 누워서 30분 이상씩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그때 쌓인 근육의 긴장이겠거니 싶긴 했다. 이럴 땐 뭘 어떡하면 되는 건지 인터넷에 검색이라도 좀 해 보고 싶었지만 도대체 뭐라고 검색을 해야 하는 걸까. 엄지손가락 통증이라고 하면 엄지손가락 중간에 있는 마디나 손등 쪽의 뼈 부분의 통증에 대한 글들만 줄줄 검색되어 걸려 나온다. '엄지 손가락 아래 볼록한 부분' 따위의 흐리멍덩한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서 이딴 걸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적지 않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부위에 불편감이 있었고 그분들 또한 대개 나처럼 그 부위의 정확한 명칭을 알지 못해 '엄지손가락 아래 볼록한 부분이 아파요' 하는 식의 질문글을 써 두신 덕분에 간단한 마사지법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문제의 '엄지손가락 아래 볼록한 부분'의 정확한 명칭을 찾아냈다. 무려 '엄지두덩근'이라고 한다. 해부학적인 지식은 전혀 없지만 눈꺼풀의 볼록한 부분을 눈두덩이라고 부르니까 거기서 착안한 이름이 아닐까도 싶다.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 손 한쪽을 양손으로 붙잡고 엄지로 쓸어내듯 문질러서 마사지해 주는 것이지만 아쉬운 대로 혼자서도 양손을 악수하듯 잡고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다는 모양이다. 세상 모든 것의 '명칭'이 적혀있는 사전 같은 게 필요한 이유는 '있어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