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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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불쑥 밥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다른 그 누가 아닌 내가 먹을 건데도 말이다. 지난 일요일이 좀 그런 날이어서 간만에(배달 어플의 주문 내역을 뒤져보니 무려 두 달이나 먹지 않은) 계란말이 김밥을 사다가, 얼마 전 간만에 조회수 알림이 터진 비빔막국수 하나를 곁들여서 맛있게 잘 먹었다. 김밥을 주문해 놓고 찾으러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나는 때 아니게 후끈한 공기에 당황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습관처럼 껴입고 나갔던 패딩을 벗어놓고 집 앞 편의점이나 잠시 갈 때 입던 플리스 가디건을 입고 다시 나갔었다. 그러고도 하나도 추운 줄을 몰라서, 새삼 올해 여름은 4월부터 11월까지라던 기상청의 예보를 다시 한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제 미팅을 갈 때는 처음부터 패딩은 꺼내보지도 않았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커버를 씌워 옷장 구석으로 밀어두었던 봄가을용 아우터를 꺼내 놓고, 그래도 혹시 몰라서 안에 받쳐 입는 이너를 기모가 달린 것으로 골라 입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까지도 할 필요가 없었다. 며칠 사이에, 참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 폭설이 왔고 새벽 가장 추운 시간에는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졌었는데 공기 자체가 변해 있었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거나 하는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아 이제 겨울 다 갔구나 하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저녁 무렵에는 불쑥 좀 춥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삼주섬 무릎담요를 끌어 덮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전기장판을 켜지 않고 잠드는 것도 조금 꺼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길면 2주일, 짧으면 일주일 안에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조만간 또 침대를 싹 갈아엎어서 매트리스 커버부터 시트며 두꺼운 겨울용 이불까지 차곡차곡 빨아서 싸 넣어야 할 시즌이 오겠구나 싶다. 나의 봄이란 어느새 창밖의 봄꽃이 아니라 갈아야 할 침대의 침구에서 오게끔 되어버렸으니까.


일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다가 보니 이너로 입고 나간 맨투맨에 패딩에서 빠진 깃털 하나가 붙어 있었다. 곱게 붙은 것이 아니라 반쯤 꽂혀 있어서 빠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깃털을 떼서 버리며, 이젠 정말 슬슬 패딩을 드라이해서 옷장 구석에 처박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까, 입고 나가지는 않더라도 3월까지는 일단 스탠바이 시켜두기로 한다. 드라이까지 다 해서 싸 넣어놓은 옷을 또 꺼내 입어야 하는 돌발 추위가 오는 건 언제나 사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작은 사실이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하겠지.


또 그렇게, 3년째의 봄이 오고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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