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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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누구에게나 '사는 것 좀 정리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세계일주도 있겠고 때늦은 공부도 있겠고 실제로 주변에는 탱고 배우는 것이 만년의 위시리스트인 분도 계시다. 나의 경우는 단연 '피아노 배워서 캐논 변주곡을 치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칠 줄 알고 모르고 간에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 한두 달쯤은 격의 없이 참 많이들 다니는 것 같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겠다는 부모의 특별한 염원이 아니라, 학교를 마친 비는 시간 중에 적당하게 보낼 만한 사교육 기관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 와중에 무려 피아노이기까지 하면 부차적으로 악보를 읽는 법이라든가도 배울 수 있고 또 자그마치 피아노라고 하니 적당한 교양이라도 하나 익히게 한다는 점도 만만찮은 메리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흔해빠진' 피아노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보지 못했다. 친구들은 죄다 가기 싫어서 입이 한 발이나 나와서 가는 피아노 학원을, 나는 몹시 한 번 다녀보고 싶었지만 차마 부모님께 보내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해 다니지 못했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는 멋없는 어른이 되고 보니 그냥 어릴 때 눈 딱 감고 부모님을 졸라 바이엘이라도 배웠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영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 '사는 게 좀 정리되면' 피아노 취미반이라도 다녀서, 띄엄띄엄하게나마 캐논변주곡을 칠 줄 알게 되는 것이 내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쳤었고, 그래서 부모님이 그렇게나 기를 쓰고 반대하지만 않았더라면 음대에 갔을 거라던 그는 그 말을 듣고 언제나 그렇듯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학원은 무슨 학원이냐고, 언제 쌈직한 디지털 피아노라도 하나 사자고, 캐논 정도는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캐논 변주곡은 참 신기한 것이, 감쪽같이 몇 년씩 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듣고 싶어지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그럴 때에 들어보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있는가 두 번 세 번 감탄하게 된다. 요즘 내게는 또 몇 년만의 캐논기가 돌아와서, 유튜브에서 종류 별로 연주 클립을 찾아가며 듣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새삼 떠올린다. 피아노 배워서 이 곡을 내 손으로 치겠다는 대수롭지 않은 꿈이 있었는데 그것조차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하고.


캐논은 어려운 곡은 아닌데 잘 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은 곡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런 소릴 할 거면 가르쳐나 주고 할 일이지. 아무튼 난 이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유감이 너무 많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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