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찔이의 매운 라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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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매운 것도 잘 못 먹는 맵찔이 주제에 끝까지 매운 라면 못 놓는 나의 미련함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이나 브런치 지면을 통해 이런저런 글을 쓴 바가 있다.


요즘 내가 라면을 먹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어딘가에 나갔다가 밥을 사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있는 식은 밥에 대충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끼니를 때울 때는 순한 맛 라면을 먹는다. 반대로 집에 있던 중에 라면을 먹게 되어서 상대적으로 좀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라면에 이런저런 것을 넣고 끓여서 매운맛도 죽이고 좀 더 맛있게 끓여 먹어볼 연구를 한다. 요즘 나름 심취해 있는 레시피는 라면을 끓일 때 케첩을 한 숟갈 정도 넣고, 파와 표고버섯 비엔나소시지를 몇 개 정도 넣는 것이다. 이렇게 끓인 라면은 나 같은 맵찔이도 그다지 훌쩍거리지 않고, 무난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소위 국민라면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라면이나 요즘 잘 팔린다는 매운맛 라면으로 테스트를 해 본 바 이 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한참 일을 하던 중에 뭐라도 한 그릇 먹어야 할 시간이 되어서, 갑자기 더럭 귀찮아져서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케첩만 한 숟갈 두른 매운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수준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먹을만했다. 매운 라면을 먹었을 때 특유의 입과 혀에 쏟아지던 통증이 거의 없어서 그 사이 매운맛에 대한 내 내성이 조금 높아진 것일까 하는 생각에 쓸데없이 조금 뿌듯해졌다.


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무슨 할인 행사로 싸게 파는 매운 라면 한 팩을 산 일이 있었다. 이 라면은 내가 늘 먹던 정도의 매운 라면이 아니라 이름에서부터 이 라면 맵습니다 하고 적혀 있는 '아주 매운 라면'의 범주에 속하는 라면이다. 그런데 며칠 전의 작은 성취에 잔뜩 고무된 나는 이 라면 또한 대충 어떻게든 먹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역시나 케첩 한 숟갈만 넣고 끓이는(그나마 이것까지 안 넣지는 못했다) 무모한 짓을 했다.


라면을 들고 앉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내가 뭔가 대단히 섣부른 짓을 했다는 것을. 톡 쏘는 냄새에 한 젓가락 먹기도 전부터 코 속이 간질간질한 것이 재채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마 먹고 죽기야 하겠나 하고 용감하게 돌진해서 입 안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에 따라 둔 물을 허겁지겁 마시는 데까지는 정확히 다섯 젓가락이 필요했을 뿐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국물에 만 밥까지를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나는 화끈거리는 입 속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물을 한 입 가득 입에 물고 몇 초간 있다가 삼키고 또 한 모금 더 머금고 있는 짓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역시나 난 맵찔이가 맞았고 별도의 처치를 하지 않은 매운 라면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인 것이 맞았다. 도대체 그깟 매운 라면 좀 먹는 것이 무슨 일생일대의 숙제라고 비슷한 삽질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인터넷 밈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img.pn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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