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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유찰꽃 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만 원 남짓한 가격에 이런저런 꽃들을 랜덤으로 섞어서 한 다발 보내주는 상품이다. 아마 졸업식 시즌이 지나버려서 미처 소비되지 못한 꽃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번 튤립부터 스토크에 이르기까지 뜻하지 않게 꽃의 줄기 끝을 어떻게 자르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 과정을 쓴 바가 있다. 그리고 그 의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뿌리도 없이 물에만(가끔 꽃병에 설탕 같은 것을 타 놓는 분도 계시다고는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 편이어서) 꽂아놓는 꽃이니 먹을 것이라고는 오로지 물뿐이고, 그거나마 듬뿍듬뿍 잘 먹으라고 가급적 깊은 사선으로 잘라주고 있지만 튤립과 스토크에서 이미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 번 그의 봉안당에서 집에서 애면글면 물을 갈아주는 것보다 훨씬 더 예쁘게 핀 프리지아를 보고 마음이 상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사흘 전쯤 새로 주문한 유찰꽃을 받아 줄기를 다듬으면서, 불쑥 혹시나 프리지아도 줄기 끝을 사선이 아니라 일자로 잘라주면 좀 오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줄기가 단단한 장미는 빼고, 알스트로메리아부터 프리지아까지 온 꽃들 대부분을 다 줄기를 사신이 아닌 일자로 잘랐다. 그리고 우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프리지아는 지금껏 집에 가져다 놓은 프리지아 중에 제일 아름답게 피고 있는 중이긴 하다.
이게 정말로 우연인지 아니면 진짜 뭐가 있는 건지 싶어 인터넷 몇 군데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그중 한 화원의 사이트에서, 나는 장미나 소국 등 줄기가 단단한 꽃을 제외하고는 지나친 물 올림으로 줄기가 물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줄기를 일자로 잘라주는 편이 좋다는 글을 읽었다. 역시나 이게 문제였던 건가. 그런 거라면, 그간 꽃병에 꽃 제대로 꽂을 줄도 모르는 내 손에 걸려든 죄로 참 많은 꽃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빨리 떠났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뒤통수가 찌릿해졌다.
그러고 보면 꽃을 사다 놓기 시작한 초반에 꽃병에 물을 거의 절반 가까이씩 담다가 꽃집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물을 줄기 끝이 잠기는 정도에서 조금 더 담는 정도로 바꿨고 그러고 나서도 꽃의 수명이 많이 늘어났었다. 그때도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그냥 어차피 먹을 거라곤 물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실컷 많이 먹으라고 그랬던 건데 그것 때문에 물에 닿는 줄기가 빨리 상해서 꽃의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고 들었던 것 같다. 방법도 모르는 채로 뭔가를 사랑하는 건 때로는 별로 좋지 않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나는 항상 너무 늦게야 알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