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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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오후쯤이었다. 일 관련해서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어제까지 해서 넘기기로 한 일의 범위를 상대 쪽에서 잘못 알고 있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문제가 생기면 갑 쪽에서 말을 잘못 알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나는 분명히 의사표시를 해 놓고도 상대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만 했다. 한참이나 날 선 말들을 주고받다가, 말다툼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기에 일정 조정을 다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다.


자꾸만 다운되는 기분을 어쩌지 못하고 혼자서 쩔쩔매다가 응급 처방을 허기로 했다. 집 근처 생활용품점에 가서 비싸봐야 5천 원 남짓한 물건들 앞에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하는 재벌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꾸역꾸역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서도 효과는 내심 회의적이었다. 오늘은 가봤자 딱히 살 물건이 없는 것 같은데.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건 내 기우여서 빨간 바구니를 들고 매장 안을 두어 바퀴 돌다 보니 어느새 내 바구니 안에는 고른 물건이 얼추 만 원어치 정도가 들어 있었다. 그중 두어 가지 정도는 조만간 사야 하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 필요는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냥 사버리기로 했다.


나름의 졸부 코스프레를 마치고 계산한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아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몇 발자국 걷다 보니 눈앞에 붕어빵 트럭이 보였다. 뭔가 딱히 먹고 싶은 기분은 없었는데, 그 트럭을 보는 순간 이건 무조건 사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불문곡직 다가가서 슈크림 두 마리와 팥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한 마리씩 꺼내서 먹으며 돌아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슈크림 붕어빵이 팥 붕어빵에 비해 조금 바삭(혹은 딱딱)하게 구워지는 느낌인데 정말로 그런 건지 아니면 우연히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전날까진 분명히 날이 쌀쌀했는데 정말로 춘분 값을 하느라고 그런 건지 입고 나간 가디건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날이 순식간에 따뜻해져 있었다. 오전까지도 좀 서늘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내내 볕 안 드는 집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느라 그랬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문득, 본의 아니게 사 먹게 된 이 붕어빵이 아마도 올 겨울의 마지막 붕어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온다 간다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올해의 붕어빵은 인사라도 하고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가버린 누구 들으라고 쓰는 말인 게 맞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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