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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 정도는 꼭꼭 들어가 보는 카페 게시판에 감자 좀 사주세요 하는 글이 올라왔다. 무슨 소린가 하고 눌러보니 요즘 어수선한 시국에 시위 중이신 한 농민 분이 남아있는 감자를 급히 처분하신다는 모양이었다. 4킬로 10킬로 20킬로가 있는데 4킬로는 택배가 되지 않고 20킬로는 내가 식당이라도 할 것도 아니라 해당사항이 없으니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10킬로 정도인데 택배비 포함해 2만 원이었다.
이쯤에서 심각한 고민이 시작됐다. 뭐든 다 비슷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것은 확실히 금전적으로 이득이다. 쌀도 감자도 하다못해 라면도 그렇다. 다만 문제는 이걸 재놓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상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브런치를 오래 지켜봐 오신 분들이라면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싸게 판다고 감자를 막 샀다가 마지막 몇 개쯤은 거의 버리다시피 하고 감자 그거 싸다고 함부로 살 거 아니더라는 글을 쓴 적이 있던 걸 혹시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다소 비싸게 치이는 감이 있지만 그냥 마트에서 1킬로그램 채 안 되는 분량으로 포장된 감자만을 사다가 냉장고 안에 안전하게 넣어두고 먹고 있다.
감자란 역시나 구황작물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게 한 박스 정도 재놓으면 대단히 든든한 식재료다. 볶아도 조려도 맛있고 파와 계란만 있으면 국을 끓일 수도 있고 카레나 찌개 같은 것을 끓일 때도 듬뿍듬뿍 넣어서 끓이면 좋다. 다만 문제는 10킬로나 되는 감자를 과연 어디다 짱박아놓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울 때는 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며칠 전 춘분을 지나면서 날은 표가 나게 포근해지기 시작해서 급기야 다음 주쯤엔 기어이 20도까지도 한 번 찍을 모양이다. 10킬로나 되는 감자를 냉장고 안에 다 욱여넣어 놓을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밖에 두어야 하는데 과연 10킬로나 되는 감자를 내가 무사히 다 먹어낼 수 있을 것인가는 아무래도 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안 사는 것이 분명 맞긴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판매자 분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드려 주문이 가능한지를 여쭤보고 있었다.
인생 뭐 있나. 감자가 많으면 감자를 많이 먹으면 되지. 볶아도 먹고 조려도 먹고 국도 끓여 먹고 삶아도 먹고, 가끔은 믹서기에 박박 갈아서 전도 해 먹으면 되지. 1톤쯤 산 것도 아니고 고작 10킬로 사놓고 뭘 그렇게 걱정하냐고, 자그마치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 때문에 시위하러 다니시느라 못 판 감자라지 않느냐고, 이런 감자 10킬로쯤 산 게 뭐 그렇게 하늘이 무너질 일이라고 벌써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또 늘 그랬듯 적당히 '정신승리'를 한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안에도 감자가 두 알쯤 남아있지 않던지. 주문한 감자가 오면 간만에 감자나 잔뜩 삶아서 버터감자구이나 해 먹어야겠다는 속 편한 생각을 한다. 매사 이렇게 나 좋을 대로만 생각해 버리니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