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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 안 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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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겨울을 지나면서 영상 20도 가까운 온도에 대한 감이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어제 미팅을 하러 나가기 전 핸드폰 어플의 최고 기온이 19도라길래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19도면 이건 봄 중에서도 꽃샘추위 다 지나고 이제 슬슬 후끈해질 그 무렵 날씨인데. 그런 거라면 아우터 따위 필요 없이 적당한 긴팔 셔츠나 스웨터 하나만 입고 나가도 아무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래도 지금 3월 말도 채 안 됐는데 그렇게만 달랑 입고 나가는 건 어딘가 꺼려졌다. 입고 나간 옷은 더우면 벗어서 들면 되지만 얇게 입고 나갔다가 추우면 생돈 들여 옷을 사 입기 전에는 밖에서 내내 떨어야 하지 않느냐는 핑계를 대고 봄에 입는 아우터 한 벌을 우정 껴입고 집을 나섰다. 아마도 여기엔, 꺼내놓고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이 옷을 조만간 세탁해서 다시 집어넣어야 하리라는 생각에서 오는 일종의 보상심리(그러니까 본전 뽑자는 식의)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뭐 나쁘지 않았다. 딱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정도여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미팅을 마치고 그의 봉안당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봉안당으로 가는 비탈길에 내려 비탈을 오르는 중에, 콧잔등으로 급격히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반쯤 올라가니 이걸 그냥 벗어서 손에 들까 하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다. 이걸 괜히 입고 왔나 하는 생각도 같이. 숲이 많고, 그래서 제법 서늘한 길이 나와 땀이 좀 식지 않았으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면식이 있는 봉안당 직원 분에게 그의 제실 앞에 놓아둘 꽃값을 결제하면서 날이 벌써 덥다고, 당장 4월부터 덥다는데 올해는 또 어떻게 사느냐는 푸념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요즘은 봄가을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중간만 조금 있는 정도인 것 같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이렇게 후끈할 줄 알았으면 이거 입고 나오지 말걸 그랬다고 아우터의 소매를 집어 보였다. 근데 또 한동안은 아침저녁으로 기온차 크게 난다고 하니 아예 안 입고 다닐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대개 어디서나 상대를 타지 않는 날씨 이야기를 계산이 끝나고도 제법 한참이나 하고 있었다.


이번 주 미팅은 뭐 이러구러 다녀왔는데 당장 다음 주부터는 정말 저걸 입고 나갈 건지 말 건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미적거리며 미뤄둔 이불 정리며 침대정리도 이제 더는 미루기가 힘들겠다. 세상에 돈 안 들고 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데 시간은 뭐 이렇게 돈 안 줘도 알아서 잘 가는지 모를 일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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