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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죠, 창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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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어영부영하는 사이 벌써 3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이제 다음 주면 4월이고,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따르자면 더워지기 시작할 거라는 모양이다. 이제 여기서 더 어정거리다가는 거짓말 좀 보태서 겨울 이불을 덮은 채로 열대야를 맞이하게 될 참이다. 슬금슬금 겨울 이불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전기장판이 시트 아래 깔려 있는 것도 머쓱하게 느껴지던 터라(켜지도 않고 있으니 더더욱) 더 게으름 부리지 말고, 오늘쯤엔 침대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지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의 특장이 한 가지 있다. 뭔가 하나 하는 김에 온갖 것을 다 하려고 달려들어서 일을 태산만큼 키워 놓는다는 것이다. 내 침대 정리도 뭐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전기장판이나 걷고 이불이나 좀 얇은 것으로 바꿔야지 하고 시작한 일이 정신을 차려보니 매트리스 커버를 갈고 있었고 집안의 모든 쿠션 커버와 베개 커버를 몽땅 갈아 끼우고 있었으며 집안 여기저기 걸려 있는 패브릭들마저 싹 걷어다 갈아치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빨래거리가 다음 주 내내 쉬지 않고 세탁기를 돌려야 감당이 될 정도로 나왔다. 아마도 이럴 게 눈에 선해서 그간 침대 정리 좀 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면서도 손을 대지 못했던 게 아닌가도 싶다.


검정색과 짙은 회색 같은 무채색 일색이던 겨울 침구를 싹 걷어내고 나름 파스텔톤인 봄가을용 침구로 바꾸어 끼우고 보니 잔뜩 찌푸린 데다 바람만 휑하니 부는 바깥에는 아직 미처 덜 온 봄이 집안에는 미리 온 것 같은 기분이라 나름 아침나절 대대 혼자 종종거리며 쫓아다닌 보람이 있는가도 싶다. 뭐 요즘은 봄가을 옷이 그렇듯 봄가을 이불이라는 것도 얼마 못 덮고, 분명히 좀 있으면 더 얇은 이불을 꺼내야 할 테지만 집안 전체가 몇 그램쯤은 가벼워진 기분이라 그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 중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기껏 이불을 다 바꿔놓고 나서 날씨를 확인해 보니 당장 이번 주말에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져 새벽엔 영하로까지 잠깐 내려간다는 모양이다. 이쯤에서 귀 얇은 나는 아 그냥 일주일만 참았다가 이불 바꿀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한다. 그러나 뭐 이젠 할 수 없다. 세탁바구니 속에 처박혀 있는 겨울 이불을 도로 갖다가 침대에 깔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좀 추우면 추운 대로 잔뜩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면서 버틸 수밖에. 요즘은 하도 여기저기서 리메이크가 많이 되어서 원곡이 흐려진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듣기엔 아무래도 원곡만 한 노래가 없는 어떤 노래의 가사 말마따나,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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