눼에?? 분명히 약을 먹이라고 하셨잖아요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 병원에서 1년 만의 진료,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왜 약을 먹이려고 하세요?"
네에? 분명 1년 전에 약을 권해주셨던(내 기분에는 적극적으로 권하셨던) 그분이 아닌가요?
그래도 확인을 해보자고 했던 대학병원에서 다시 한번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역시나 불안과 산만이 공존하는 ADHD 의심이라는 결과였다. 심지어 임상심리사의 보고서에서 아이는 저번 검사보다 더 산만하게 서술되어 있는 듯했다.
우리에게 준 유예의 시간 1년의 결과표였다. 저번 결과와 비교해서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사 선생님은 저번 결과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하셨다. 신랑과 이번에도 같은 결과면 무조건 약을 먹이자에 합의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의사 선생님은 정확한 타깃이 없다고 약을 권하지는 않고 지켜보다가 약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원점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에 갔던 병원을 다시 예약했다. 그래도 재진이라고 예약이 한결 수월했다.
정신없이 학기를 마치는 와중에 학기말을 앞두고 12월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한 번 더 상담을 신청했다. 담임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나 완벽한' 아이라는 아들. 학업 면에서도 우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발표도 하려고 노력하고 부끄러운 와중에도 또 할 말은 다 한다고........ 학기 초 불안과 긴장으로 인해서 수시로 들락거리던 화장실 문제도 지금은 거의 소거가 된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도 담임 선생님께 산만하지는 않은지 집중을 못하지는 않는지 슬쩍 여쭤보았으나 잘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예약 일정.
아이에게 처음에 갔던 병원에 다시 가보려고 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아한 듯 자기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처음 병원에 갈 때만 해도 아이는 불안도 많고 스스로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상태라서 병원 진료를 원했으나 오히려 초등학교는 재미있게 잘 다니면서 본인은 괜찮야 졌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괜찮다는 아이에게 자꾸 병원이며 약이며 권하는 것도 맞나 싶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약 말고는 답이 없다면..
의사 선생님은 요즘 아이가 어떤지, 학교를 입학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셨다. 학교에서는 너무 잘 지내고 있고 학원이나 기관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은 없으나 저희가 보기에는 산만함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의사가 물었다.
"왜 약을 먹이려고 하세요?"
네? 이런 황당한 말이 있나. 분명히 처음에 검사하고 결과를 받았을 때는 그렇게 약을 권유하셨던 분이 지금 저렇게 되묻는 이유가 짐작도 되지 않지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사실 선생님께 말씀드리다 보니 또 아이가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주춤하면서 그래도 또 성실하게 대답했다..... 기관에서는 피드백이 없으나 집에서 할 일을 할 때는 계속 꼼지락거리고 같은 지시를 몇 번씩이나 해야 하고 그래서 제가 화를 내고.............. 그런데 왜 처음에는 약을 먹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물어보시나요?
"ADHD의 경우 1-2년 안에 좋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 검사할 때 약을 먹이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으나 아이의 경우 학교에 입학해서 다니면서 기관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다면 타깃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조금 지켜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오후에 할 일을 할 때 엄마와 트러블이 있으면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오후에 4-5시간 정도 약효가 있는 약을 먹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약을 먹는다고 아이가 갑자기 할 일을 스스로 잘하거나 말을 예쁘게 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10번 불러서 대답할 걸 5번 불러서 대답하는 정도까지는 기대해 볼 만하다."
대학 병원 의사와 같은 맥락이었다. 정확한 타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약을 먹인다는 목표가 없다는 것. 아마 아이의 성격 상 기관에서는 엄청 노력해서 잘 지내고 있고(사회생활을 나름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표현), 머리가 좋은 아이라 아직은 학업적으로도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약을 먹인다고 할 부분이 없어서라는 이야기였다.
의사의 설명에 다시 마음이 답답해지는 건 왜였을까.
약을 먹이기로 결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게 굳게 다짐한 일이었는데 다시 약에 대한 확신을 흔들어 놓는 의사 선생님 말씀이 심지어 서운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결심하고 온 것이니 오후에 먹는 약을 먹이기로 정하고 병원을 나서면서, 한편으로 약을 먹이는 게 맞나라는 의심이, 어쩌면 아이가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뒤섞여서 괴로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무슨 선택이든 아이에게 해가 없기를. 나아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