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한디

가르쳐야 하는 것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by 어떤사람

어떤 아이로 컸으면 좋겠나요?


건강하고 강건하고 담대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고는 말이 끝나지 않고.... 그리고 자기가 할 말은 할 수 있고 부당한 일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선하고 자기 할 일은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고 자유롭고 당당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좋겠고, ..좋겠고, 좋겠고 좋겠고........


아이의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 신랑과 나는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지, 우리가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한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대해서 대화하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에게 '자기 의견을 잘 말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워낙 소심하고 자기 이야기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억울한 일이나 불편한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진단을 받고서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 것 혹은 못하는 것이 아이의 산만함과 불안함 이 두 기질의 복합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산만함을 지도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쉽지 않다. 오늘 아침만 해도 아이는 나에게 무수히 많은 지적을 들었다. 밥을 앞에 두고 앉아서 멍 때리고 있어서,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아서 지적하고 씻으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하고, 다음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속 아이를 재촉하기 바빴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데 한 번에 딱딱 듣지 않는다고 또 혼이 났다. 집을 나설 때 아직 동생 신발도 신기지 않았는데 현관문을 열고 손잡이를 마구 돌려서 버럭 했고, 현관에 놓인 신발을 밟아서 또 혼이 났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아이를 앉혀 놓고 '손잡이를 마구 돌리면 될까 안될까? 안 되는 거 모르고 돌렸어?'라고 물으니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그건 내가 아직 못 배워서...'라는 기똥찬 대답을 내놓았다. 아, 안 가르친 나의 잘못이구나... '그래, 이제 배웠으니까 하지 마.'라고 하고는 나도 지기 싫어서 '바닥에 신발을 막 밟으면 안 되는 건 알잖아. 하지 마.' 했다. '그건 내가 못 봐서..'라고 아이는 주눅이 들어 말하고는 등원을 하기 위해서 집을 나서는데 또 마음이 짠했다. 아이를 상대로 지기 싫을 건 뭐고, 이기고 지는 게 있을 리도 없는 일에서 나는 자존심을 세우느라 아이에게 말을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자유롭고 자기 의사표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매번 이렇게 혼내고 지적하는 것은 아이의 주도성이나 창의성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을 그냥 두는 것도 안 되는 일이 아닐까 했다. 그러다가 해서는 안 되는 기준도 순전히 나의 기준이 아닌가 라는 자기반성도 들었다.


무엇을 얼마나 어디까지 가르치고 한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고민스럽다. 특히나 아이의 진단 후 나는 자꾸 아이의 모든 특성을 ADHD와 연결시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더 많이 지적하고 제재를 하게 되면서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궁금한 호기심에 하는 행동(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서까지 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해서 늘 고민이다. 아이가 세상에 제 힘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나는 정말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편하기 위해서 아이를 닦달하고 있는 것일까. 명확하게 답을 정할 수 없는 문제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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