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불편한 일을 자꾸 겪었으면 좋겠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겠지.

by 어떤사람

20240125


오랜만에 친한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의 진단 후 아이가 진단받았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평소 그런 일은 숨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이야기가 되고 보니 숨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씌워질 주변의 시선과 낙인이 너무 분명했고 아이가 겪을 시선이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간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부모면서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만한 생각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오늘 만난 선생님은 아이의 상황을 오픈한 몇 안 되는 지인인데 특수교사이기도 했고 우리의 생활과 접점이 없기도 해서였다.


아이의 진료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유치원 과학 시간의 사건이었는데 평소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잘 해내야 했던 아이는 그날따라 과학 시간 과제가 잘 되지 않아 눈물이 났고 선생님이 달래주셨는데도 눈물이 쉽게 그치지 않아 선생님이 교무실에 가 있으라고 하셨다. 교사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아이는 그것을 벌로 받아들였고 평소 잘못을 하거나 혼나면 가는 곳이라고 여기고 있던 교무실에 분리되는 일이 엄청난 불안을 야기시켰다. 이 결정적 계기로 인해서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것, 과학 시간이 있는 날, 자신이 기대만큼 못할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폭발했고 매일 밤 귀에 피가 나도록 이야기하고 울고 달래야 했다. 6개월을 넘게 시달리면서 나는 너무 지긋지긋한 일이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그 선생님이 '잘 됐네. 다행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이가 불편한 일을 자꾸 겪었으면 좋겠어.'


그 선생님도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연령의 아이를 둘 키우고 있었다. 본인은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을 환경이 준비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안했었는데 최근 들어 아이에게 다 맞춰서 환경을 조성해 주면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나름대로 해결할 방안을 경험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불편한 일을 겪고 문제가 생기는 인지적 부조화 상황이 있어야 아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그런 상황을 겪어야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든, 감정을 터트리든, 변명을 하든 방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 그렇네. 요즘 다들 그렇게 귀하게 키우고 다 맞춰주고받아주면서 키우니까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겠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이 교사의 지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나 보다라며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아이를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아이에게 스스로 해보라고 하고 도전해 보라고 하고 어렸을 때는 넘어져도 달려가서 일으켜 주는 일도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눈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돌아보니 아니었다. 나는 아이가 겪을 불편함을 내가 먼저 예상하고 그 불편함을 내가 먼저 제거해 주는 쪽이기도 했다. 준비물을 제대로 안 가져가면 아이가 불편할까 봐 과하게 반응하고, 혹시나 싶어 아이 가방에 마스크며 밴드를 늘 챙겨 주기도 했다. 감정적으로 불편할까 싶어 불편할 감정은 미리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어쩌면 아이는 그런 상황에 던져져도 혼자서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먼저 대안을 마련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어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일 아이는 합기도장에서 눈썰매장을 가는 날이라고 설레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입고 가야 할 스키 바지와 부츠가 아이가 혼자 처리하기 버겁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옷을 입고 가서 갈아입으라고 해야 하나 하다가 누가 갈아입혀 주나 싶어서 포기했다. 그럼 오전에 유치원에 안 보내고 집에 데리고 있다가 점심때 합기도장에 내가 데려다줄까 생각했다. 아, 이런 거구나. 나는 지금도 아이를 대신해서 미리 대안을 마련하고 있구나. 정말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힘들지 힘들지 않을지도 모르면서, 그저 내 기준에서 못 믿어서... 아이가 스스로 방법을 찾겠지 아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자. 하고 아침에 아이를 보내면서 몸에 버거운 옷이 신발이 챙겨야 할 모자며 장갑이 걱정스러웠지만 어려우면 도와달라고 하라고 하고는 아이를 보냈다. 그리고는 잠깐 몰래 썰매장에 가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언젠가 본 육아서에 이런 말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향내가 아이에게 묻어난다. 부모가 늘 불안하게 생각해서 잔소리를 하며 키운 사람은 성장해서도 그 향내가 묻어나서 다른 사람들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잘 믿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키운 아이들은 자라서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는다는 요지였다. 부모가 아이를 보는 방식이 아이 스스로 자신을 보는 방식으로 녹아든다는 말이었는데 당시에 깊게 마음에 와닿았었다. 지금 나는 어떤가? 아이를 신뢰하고 믿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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