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8번의 일요일
2024.06.09.
스물한 번째 근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아, 재밌다!!
귀한 명작을 만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으로 내가 정화되고 고요해지는 것 같은,
마치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문장 문장마다 천천히 읽히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고,
그런 느린 독서 중에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몰입했다.
온전히 책에 빠져들어
'이게 독서다'라는 느낌을 제대로 경험한 것 같다.
24년간 활동하며 단 네 권의 책만 펴냈다는 작가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렇게 응축하고 덜어내고 다시 채워서 내놓은 글이기에
단편만큼 짧은 이 책이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서
필사하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장을 덮는 것이 아쉬웠고,
다시 한번 꼭 읽어야지 싶다.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이 책과 함께 한 것 같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이어서 행복하고
예약도서로 분류된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었던 건 특권처럼 느껴진다.
펄롱이라는 평범한 가장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보통의 삶을 담고 있다.
가족 부양의 책임감, 나이 들어가는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가끔 떠오르는 '다른 삶'에 대한 상상까지.
그는 따뜻함과 성실함 속에 눌린 마음들을 품고,
다섯 딸을 둔 가장으로서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그런 그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에
맞서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가슴 아리게 다가왔다.
대단한 결정을 앞두고 이리저리 떠돌며
마음을 정리하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너무나 짠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전율이 있었다.
나 역시 펄롱처럼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결과를 감당하리라.
순진하게, 그냥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글과 상황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예술 그 자체였고,
그 감정들이 공감될 때 이 책이 명작임을 새삼 느꼈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맡겨진 소녀>도 궁금하지만,
마음을 이렇게 휘젓고 가는 책은 연달아 읽으면 감당하기 힘드니
조금 기다려보자 �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펄롱은 트럭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닫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었으며 최고 속도로 엉뚱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가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 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잠시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떠돌게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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