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스레터
단언컨대,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각자의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나의 결핍은 어렸을 때부터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빼빼 마르고 작은 몸이었다. 나름 태권도를 꾸준히 했다지만, 겉으로 보기에 운동한 것 같은 근육질의 몸은 아니었고, 인바디에 찍힌 골격근량은 17kg에 불과했다.
만약 그 결핍을 그냥 두었다면, 나는 흔한 마른 체형의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고, 트레이너라는 일은 애초에 시작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결핍을 결핍으로만 두고 싶지 않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크로스핏에도 재미를 붙였다. 누군가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나는 체육관을 나갔고, 무거운 무게를 들며 땀을 흘렸다.
물론, 타고난 프레임이 좋은 근수저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골격근량이 30kg을 넘는 근수저들(*여성)은, 애초에 내가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건강한 몸’이나 ‘운동을 잘 하는 몸’의 기준은 단순히 골격근량으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나는 바꿀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았다. 나의 비교 대상은 언제나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 한 달 전의 나, 1년 전의 나였다.
부러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시샘하거나 얕잡아보는 말로 풀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으로 삼아 더 노력했다. 그 과정은 나에게 즐거움과 뿌듯함, 그리고 자신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시간이 쌓여 나는 결핍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운동의 장점은 하는 만큼 몸이 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다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을 건네도 상대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전혀 다르게 해석해버리면 관계는 엇나가기 쉽다. 사람은 배신할 수 있어도, 운동은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본인의 결핍을 감추려 타인을 끌어내리려는 사람,
노력하지 않고 타인을 무시하고 비난만 일삼는 사람.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스스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핑계를 만든다. 재능 탓, 시간 탓, 환경 탓... 결국 늘 남 탓. 세상은 늘 자신을 가로막는다고 여긴다. 물론 사회적 구조나 환경의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탓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스스로 노력하는 것보다, 타인을 끌어내리는 일이 더 쉽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극복할지, 타인을 끌어내려서 감출지, 아니면 결핍을 방치할지.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나의 선택이 나를 만든다.
본인의 삶에 충실하며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만 챙기기에도 바쁜 삶인데, 타인에게 참으로 관심이 많은 현대사회다.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