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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7. 2022

처음, 편식의 이유를 말하다


가족과 외식을 하는 날.

나는 그 자리에서 깻잎코패스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메뉴는 불고기였다. 식탁에 맛깔스러운 반찬과 풍성한 채소들이 함께 나왔다. 아이는 평소 채소를 잘 먹지 않았다. 그날도 너무 고기만 먹는 것 같아서 야채도 같이 먹어보라고 했다.


"깻잎 한 번 먹어봐?"

"나 깻잎 싫어해."

"왜"

"뒤에 털이 나 있어서 싫어."

"털?"

나는 깻잎을 들어 과학수사관처럼 뒷면을 살폈다. 깻잎을 이렇게 오래 관찰한 건 처음이었다.

아이가 깻잎 특유의 향 때문에 안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니...


"깻잎 먹으면 입 안이 까끌까끌해."


깻잎이 무슨 스웨터도 아니고.... 한 마디 하려는 순간


얼마 전 읽은 정지우 작가님의 글이 떠올랐다.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오이를 싫어한다고 했다. 먹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했단다. 어른이 되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들은 오이를 강제로 먹이는 사람들을 가리켜 '오이코패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주간 배짱이 128호 글 중에서-


상황이 딱 맞아떨어졌다. 깻잎을 싫어하는 애한테 더 이상 깻잎을 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난 깻잎코패스가 아니었다. 그래 나도 고기를 구워 먹는 건 괜찮은데, 국에 빠져 있는 건 별로잖아. 반대로 국에 있는 고기를 누군가 계속 먹으라고 강요한다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음식을 강요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고수를 안 먹는다고 하면  '고수 먹기 힘들 수 있지'라며 쉽게 인정한다. 두리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과를 못 먹는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과 왜 못 먹어? 사과 영양소가 얼마나 많은데... 한 번 먹어봐.' 라며 작은 강요를 반복한다. 상대의 의견보다는 음식의 대중성과 내 기준으로 판단한다. 누군가에게는 사과가 두리안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치판단을 지양하라고 했다. 아이가 책을 보는 것은 괜찮고, 게임을 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도 나의 가치판단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치판단이라는 말이 생소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는 사실문제와 가치문제로 구분된다. 사실문제는 지진이나 사고 등과 같이 육하원칙으로 진술이 가능한 사회문제이다. 경험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이 증명되면 논란의 여지가 없고 의견 일치가 수월해진다. 반면, 가치문제는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을 판단하는 문제로, 사람들의 기호, 가치관 및 신념 등 주관적인 평가 기준에 따라 주장이 다르게 나타나는 사회문제이다. 가치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문제보다 해결이나 의견수렴이 훨씬 어렵다.   <두산백과: 가치문제 중에서>




이런 관점으로 본다며 삶 속에서 무수한 가치문제가 있고, 가치판단이 행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AI가 아니기에 가치판단이 저절로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단지 머릿속에서만 작동한다면 괜찮지만 많은 경우 입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는게 문제였다.



"깻잎은 털 때문에 싫어."

라고 말했을 때,

"그럴 수 있지. 상추는 괜찮아?"

"응"

"그럼 그걸로 먹어."

라고 해야지

"털은 무슨 털, 깻잎이 얼마나 맛있는데, 먹어봐. 안 먹으면 키 안 커."라는 가치판단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깻잎코패스가 되는 것이다.


내가 한 말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깻잎코패스가 될 만큼 폭력적인 말이었다고 인식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둘 사이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비단 깻잎뿐 아니라 삶 속의 많은 대화에서 가치판단의 말이 넘쳐흐른다.


남편과 주차를 할 때면 자주 부딪혔다.

나는 주변에 차가 없는 텅 빈 곳을 선호한다. 그래야 주차도 편하고 차 밖으로 나갈 때 문을 활짝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은 양 쪽으로 차가 주차된 곳 사이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야 내 차가 안전하다고 했다. 다른 차가 내 차를 긁을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했다.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에 주차를 할 때마다 삐걱댔다. 서로가 상대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다 절충안을 찾았다. 주차 전 넓은 공간에서 내가 먼저 내리고 주차를 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사소한 지점에서도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 그 다름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말고,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오해와 갈등을 줄이는 공식 : 가치판단으로 변환해보자.


그러면 우리처럼 서로에게 주차코패스를 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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