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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15. 2022

눈치 없는 알고리즘





새로운 곳에 이사 와서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서로 말이 너무 잘 통했고, 취향도 비슷했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빠른 시간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해서 대화의 주제도 거침없이 이어졌다.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다고?’ 믿기 어려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주고받는 말은 넘쳤지만, 영혼까지 울리는 대화는 없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만난 친구는 갑자기 나타난 빛과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을 꼬박꼬박 만나다가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에 진하게 물들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해도 꺄르르르 웃었고, 우리는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빙그레 웃으며 환한 리액션을 해주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우리는 동네 음식점을 같이 가고, 핫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친구를 만나고 오면 일상의 먼지가 청소되는 기분이었다. 무채색의 시간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생겨났다. 점점 살맛 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가 관심 있어하는 것에 나도 관심을 기울였고, 나의 관심사에도 그도 동참했다.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여서 같이 있으면 나까지 멋스러워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이어진 뾰족한 말. 어떤 지점에서 친구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지 돌아봐도 알아채기 힘들었다. 카톡은 억양이 없기에 더 차갑게 느껴졌다. 친구는 내게 독한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은 내 언어의 범주에서는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에 우리의 대화에 잘못된 지점이 있었는지 주변에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말 화살에 맞았다.





그렇게 한순간에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 험한 말을 듣고도 화는 났지만,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돌아보고, 오히려 친구의 마음을 살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점이 화가 난다. 나도 속상함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저 뾰족한 말에 계속 찔리고만 있었다.    


사람들 안에는 저마다 폭탄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통통한 사람에게 “밥 잘 먹는다.”라는 일상적인 말이 상대를 분노하게 하는 폭탄이 될 수 있고, 임신으로 살찌는 것에 스트레스인 사람에게 “임신 말기에는 살이 많이 붙더라.”라는 말이 폭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말 그대로 상대의 마음 속 폭탄.



대화 중, 알아채기는 정말 어렵다. 언제 폭탄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지점에서 화가 나는지도 알 수 없다.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종종 있다. 상대는 모르는 말 폭탄이 터지는 순간 말이다.     

나라고 왜 없는가?


대화가 끝나고 돌아올 때, 어떤 지점에서, 어떤 말에서 화나고, 속상하지만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내 감정을 돌보았다. 상대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을 아닐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미처 알지 못할 만큼 분노하며, 그동안에 쌓은 관계는 무의미하다는 듯 자기만의 감정을 다 쏟아낸다.


나는 평생 담지 못할 말을 들은 후 마음도 굳어갔다. 나의 행동과 상황을 돌아보다가 결국 내 상처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 우리의 관계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내 모습마저 처참하게 느껴졌다.     



그 후 우리의 인연은 끝났다.




그런데 우리의 사이를 모르는 알고리즘은 자꾸 인스타그램에 그의 스토리를 맨 앞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요즘 삶의 일 순위는 그였기에 알고리즘은 평소대로 그의 일상을 보라며 나를 재촉했다.     



그래 알고리즘 네가 지금 우리를 어떻게 알겠니? 생각했다.




계속 불편한 채 외면했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그의 얼굴을 갖다 놓는 알고리즘.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 사이가 이렇게 끝난 게 아닐 거라는 작은 미련을 붙잡고 그를 차단하지 않았다. 언제든 다시 연결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2주 동안 스토리를 누르지 않은 채 모른 척했다. 하지만 외면할수록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 어쩌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된 건지...

아프고, 속상하고, 고통스러웠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증발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지속되는 눈치 없는 알고리즘의 행동 덕에,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결국 차단을 눌렀다. 그제야 알고리즘은 더 이상 내 앞에 그의 안부를 전하지 않았다.    


요즘의 인간관계에는 상대와 나 단 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는 알고리즘이 늘 껴있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구조는 이인이 아닌 삼인 체제인 세상이 되었다.     




알고리즘 걔는 참 똑똑하고, 성실하고, 매력 있는데

눈치 없는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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