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Jan 13. 2023

마음 울적한 날엔 뽀삐를.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노래 칵테일 사랑의 가사/ 마로니에>     


/



마음이 울적한 날이었다.

자꾸 생각에 안개가 껴서 도통 햇빛이 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럴 땐 꽃을 사야 했다.     

특별하거나 축하하는 날에도 꽃이 필요하지만, 울적한 날에는 더 꽃이 필요했다.



꽃은 기분에 조명을 켜준다.



오동통한 만두를 닮은 튤립을 사고 싶었다. 지금 기분에, 튤립 한 다발이면 내 주치의로 딱이었다. 자주 가는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꽃집 사장님이 나를 더 반기는 눈빛이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고르듯 꽃을 눈으로 살폈다. 튤립이 있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하얀색이 아니었다. 재빨리 다른 꽃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양귀비가 보였다. 고혹적인 양귀비도 좋아하는 꽃이다. 접시처럼 넓은 잎이 가느다란 초록 줄기에 앉아 있는 꽃. 들판에서도 바람이 불면 우아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예뻤다.





“양귀비네요.”


양귀비 중에서 종이처럼 구겨져 있는 꽃이 있었다.


“이건 다 진 거예요? 아닌 피는 거예요?”


“이건 피는 거예요. 지금 초록 껍질이 벗겨지고 곧 필 거라 이렇게 동그란 거예요. 양귀비가 시장에서 사 올 때, 다 초록 껍질로 싸져 있는데, 껍질을 밀고 하나씩 피어나더라고요. 그런데 필 때까지 색을 몰라서 그걸 보는 재미가 있어요. 이걸 보면서 오늘은 00님이 왔으면 좋겠다. 이 꽃 좋아하실 텐데... 하고 생각했는데 문 열고 등장하셔서 놀랐어요.”     


양귀비의 이야기에도 놀았는데, 날 기다렸다는 꽃집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또 놀랐다.      



“보통 꽃의 색을 보고 고르는데, 이 양귀비는 그걸 모르는 재미가 있네요. 학창 시절 뽑기 게임도 떠오르고, 신기한걸요.”     

“그죠? 이런 얘기는 다른 분들과는 못하는데 00님과 나눌 수 있어, 제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꽃 좋아해서 여러 번 사지만, 양귀비 이야기는 처음 알았어요. 꽃시장의 사장님도, 이걸 가져온 대표님도 꽃 색을 모르고 사 온다니..”     

“다음에는 꼭 봉오리인 걸로 데려오면 연락드릴게요.”     

“연락 주세요. 저도 그 신기함 느껴보고 싶어요.”     



어떤 색의 꽃이 필지 모르는 양귀비, 뽀삐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하루. 눈을 떴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처 알지 못한다. 어떤 기분일지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하루뽀삐를 닮아 있다.



뽀삐의 색을 보려면 초록색 껍질이 떨어져야 하듯 하루가 시작되면, 비소로 기분의 색을   있다.      



명랑한 하루를 닮은 노란색 뽀삐일 수 있고

별일 없던 평범한 날은 하얀색 뽀삐일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날은 주황색 뽀삐가 핀 날이겠지.   


       

오늘 하루의 색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꽃을 피웠을까?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는 꽃.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꽃.     



하루가 한 송이 꽃(뽀삐)이라면

살면서 얼마나 많은 꽃을 피워냈을까?     






올해도 벌써 13송이의 꽃이 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곤경에 빠진 나를 구한 건, 유튜브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