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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18. 2023

처음, 꿈을 말하다



“올해 나의 꿈은 가위손이야.”

“가위손?”     

“올해 나의 꿈은 전교회장이야.”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단어였다. 가위손이 된가는 것이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 물었다.


“가위손이 뭐 하는 건대?”

“학교에 가위를 3개씩 가지고 다녀서 필요한 친구들 나눠 주는 거야.”     



황당한 단어 치고는 꿈이 예쁘고 다정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긴 한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어?”

“작년에 우리 반에 풀 5개씩 가지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어. 친구들이 풀이 필요한 때마다 그 친구한테 빌려달라고 부탁하더라고... 그게 좋았어. 그 친구 이름이 지원이었거든. 애들이 풀 필요할 때면 지원아, 풀 좀 지원해 줄래?라고 말하면 다들 웃었어.”     



친구가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전교회장이 아니라 가위손도 괜찮은 꿈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자주 준비물을 깜박했다. 국사 교과서가 없어서 옆 반에서 빌리고, 미술시간에 물통을 안 가져와서 또 빌리곤 했다. 가장 난감했던 건 체육복 가져가는 걸 잊은 날이었다. 체육복은 빌려주는 친구도 찝찝한 품목이었는데, 친구들은 매 번 잘 빌려주었다. 무언가를 안 가져올 때면 자책을 했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빌릴수록 요령도 늘어갔다. 어제는 지원이에게 빌렸으면, 오늘은 선경이에게 빌렸다. 친구들은 한 번도 싫은 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풀을 다섯 개나 들고 다니는 지원이 같았다.      



세월은 흘러 지금의 교실에도 나처럼 깜박하고 준비물을 잘 챙겨 오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또 그들 곁에는 준비물을 빌려주는 친구도 존재할 것이다.      



아이의 꿈은 준비물을 자주 빌렸던 엄마같은 아이들을 돕는 꿈이었다.

가위손은 반 친구들 모두를 이롭게 할 것이다.         




                

p.s ----------------------------------

“그런데 반 애들이 자주 빌리는 학용품은 뭐야?”

“지우개.”

“그럼 지우개 여러 개 들고 가야 하는 거 아냐?”

“난 가위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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