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버스를 타다

by 하하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세상의 모든 처음을 만나는 일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언제가 처음이었는지도 모르는 처음. 아이와 함께면 무수한 처음을 선명하게 마주 보았다. 늘 부모와 함께 다니던 아이가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놀러 간다고 했다. 이제 세상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어느 책에도 딱 몇 살, 몇 월, 며칠에 아이를 세상밖으로 내보내도 된다고 나와있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이가 나가고 싶다고 할 때, 그때가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코인 노래방도 있고, 서점도 있고, 아트박스도 있고, 마라탕집도 있고, 탕후루집도 있었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핫플이었다. 주말 친구와 그곳(홍대같은 곳)에 가겠다며 약속을 잡았다. 친구도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나들이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몇 번의 버스를 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함께 버스 번호를 알아보고 타는 곳과 내리는 곳까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계획을 짜기만 했을 뿐, 실천하는 순간에는 내가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의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기에,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걱정이 되었다.


내릴 역에 제대로 내렸을지?

점심으로는 뭘 먹었을지?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곳을 아는지?


모든 동선을 통과해 무사히 집에 올 때까지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런 마음으로 있는데 아이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잘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흥겨운 손가락 브이를 보며 그제야 안도했다.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겠지....

지금은 기억하려고 애써봐도 희미해서 기억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첫아이는 첫사랑이다.


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엄마가 되고 직접 경험하는 처음이 있고, 아이가 큰 후, 아이가 겪는 처음도 함께 간접 경험하기도 한다. 내가 겪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애타는 그 마음 역시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애틋한 첫사랑같다.


아이는 아이로서의 삶이 매번 처음이고

엄마는 엄마로서의 삶이 매번 처음이다.


시간이 흘러 밖이 어슴푸레해질 때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얼굴에 뿌듯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그날의 일들을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몰라서 헤매었어. 지도에는 3분 거리라고 되어 있는데, 3분이 엄청 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깝더라고. 삥 돌아서 간 거 있지?"


"잘 찾아서 다행이네."


"버스벨도 언제 누르는지 모르겠더라고..."


"내릴 역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보통 내리기 전에 누르면 돼."


"다행히 다른 사람이 눌러서 내릴 수 있었어. 나 처음에는 내릴 때 벨 누르는지도 몰랐어."


"그럼 벨이 뭔 줄 알았어?"


"기사님 호출하는 건 줄 알았어."


"근데 엄마랑 버스 종종 타봤잖아? "


"그렇긴 한데, 그땐 엄마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을 안 썼지.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다 해야 되니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그러네. 또 뭐가 어려웠어?"


"버스 탈 때도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그 버스를 탈지 기사님이 어떻게 알지? 궁금했어."


"그럴 땐, 그 버스를 탈 거라고 기사님께 어느 정도 신호를 보내는 것도 좋아. 손을 살짝 흔들면 돼."


"내가 이번에 직접 버스를 타보니까, 기사님들이 정류장마다 문을 다 열더라. 안 타면 닫고.. 그래서 버스의 신비가 풀렸어."


동굴의 신비도 아니고

버스의 신비라니...


대중교통의 상징, 익숙함의 대표주자인 버스도 처음 경험하는 아이들에게는 신비 가득한 공간이었다. 엄마와 함께 할 땐, 잘 보이지 않던 것도 혼자 하다 보니 세세하게 다 신경써야 하고, 모든 것을 집중해야 했다. 아이는 직접 겪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 것 같았다.


버스를 탈 때에도

버스 카드를 충전할 때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에도

분리수거를 할 때에도


스스로 할 때 자신감이 생기고, 경험의 크기가 확장되었다. 어른은 너무 당연한 버스도 아이에게 처음이라 긴장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의 처음은 또 무엇일까?


첫 이성친구를 만나는 일

첫 신체의 변화

첫 좌절 등



사는 동안 계속 주어질 처음릴레이의 바통을 잘 이어받아야 겠다.



그래야 키가 크는 만큼 마음도 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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