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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Feb 14. 2023

9. 태어나 처음 본 물건들

스웨덴에서 만난 물건들

낯익은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새로움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나는 늘 새로운 장면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대중성을 얻기 위해서는 구석에 있는 것이나 특별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주제를 다루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장면들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본능적으로는 새로운 것들에 끌린다.


일상에서도 늘 가던 카페보다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선다. 길도 낯선 길들을 더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고 달라질 리 없었다.


스웨덴 여행에서도 비슷한 듯 다른 장면에서 자꾸 발걸음을 멈췄다. 레지던스형 호텔에 묶었던 날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콘센트를 찾는 일이었다. 여행에서는 핸드폰 배터리가 쉽게 닳기 때문에 빨리 충전해야 했다. 보통 콘센트는 숨바꼭질 하듯 구석에 숨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쉽게 보이는 곳에 달려 있었다. 커피포트 근처의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았다.


잠시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잘 충전되고 있는 줄만 알던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충전이 멈추어 있었다. 전기가 나갔나 의심을 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콘센트 옆에 달린 동그란 버튼이 눈에 띄었다. 30분 타이머 버튼이었다. 자동 설정값으로 30분만 전기가 흐르는 시스템이었다.


'이것 때문에 꺼진 거였구나.'


무방비 상태로 줄줄 흐르는 전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시스템이었다. 작은 아이디어였지만 실용적이었다.


인간의 기억력과 귀찮음을 도와주는 버틀러였다.




그 아래로는 인덕션의 시간을 설정하는 타이머도 존재했다. 전기가 흐르는 모든 곳의 낭비는 철저히 막는다는 결심이 느껴졌다. 더불어 혹시라고 켜 놓은 불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는 똑똑한 시스템 같았다. 처음 하나를 발견했을 때에는 우연처럼 느껴졌지만 인덕션, 가위 등 차례로 효율적인 아이디어를 만나다 보니, 이 호텔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물건들이 말을 건넸다.






베이컨 포장지를 뜯기 위해 서랍에서 가위를 꺼냈다. 가위도 범상치 않았다. 끝에 튀어나온 덧니 같은 형태가 눈에 띄었다.


'이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


여행에서는 지인이 없으니 늘 스스로 묻고 답해야 했다. 저절로 철학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나는 병뚜껑을 따는 오프너 같았고, 또 하나는 캔뚜껑을 다는 도구 같았다.

칼날에도 반원으로 뚫려 있는데, 캔따개 없는 캔을 따는 용도 일까? 추측할 뿐이었다.

(이 궁금증은 해결하지 못했다. 아시는 분 있을까요?)


언젠가 가위에 칼이 달린 물건을 본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네 가지 기능이 더해진 가위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A+B+C+D라니 가성비 최고, 효율 최고의 물건이었다.

가위를 보며 여러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떠올랐다. 멀티가 되는 사람들. 그 어느 곳에서나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가위를 접하고 보니, 어쩐지 가위만 있는 건, 섭섭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거리에 나가서도 무릎은 치게 만드는 물건들을 종종 만났다. 평소 꽃을 좋아해서 꽃이 보이는 곳은 무조건 다가가는 버릇이 생겼다. 파리나, 영국, 일본 여행에서는  꽃들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보았다. 어떤 컬러를 쓰는지, 어떤 디자인을 하는지, 어떤 소재를 믹스하는지…


그런데 스웨덴에서 만난 꽃다발에 놀란 건 꽃의 디자인 때문이 아니었다.

꽃 포장지에 달린 손잡이에 놀랐다.


쇼팽백에서나 볼 법한 손잡이가 포장지에 달려 있었다. 보통은 꽃집에 가서 꽃을 살 때,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들고 가기 편하도록 투명한 비닐백이나 커다란 종이가방에 따로 담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중 포장이 되곤 했는데,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 만으로도 환경을 절약할 수 있었다.


손잡이가 꽃다발 디자인을 해지지 않고 오히려 손잡이에 리본을 묶어주면 더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너무 사소한 장면에서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광관지를 가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여행 후 가장 오래 기억되는 건 이런 소소한 순간이었다.



열몇 시간 동안 비행기 안의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 이동하는 여행.

여행의 보람을 꽃다발 포장지에서 찾는다.



구석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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