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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0. 2020

거절은 회전문처럼

핸드폰은 멈춘 라디오처럼 있다가 가끔 켜지는 것처럼 벨이 울린다. 어김없이 광고, 보험회사 전화이다. 초반에는 거절이 어려워서 듣고 있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들을 끊을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광고 전화들이 쏟아졌기에 거절의 방법이 필요했다.    


“제가 나중에 필요하면 전화드릴게요.”

“지금 운전 중이에요. 죄송합니다.”

“지금 아이 데리러 가야 해서요.”    


그날의 기분에 따라 거절의 메뉴를 골랐다.


광고 전화일 것 같아서 받지 않은 날은 때때로 중요한 전화이기도 했다. 필요한 상황에는 문자로 전송되니 그 문자를 확인하고 전화하곤 했다.     

기분 좋은 거절이 있을까? 세련된 거절의 방법이 있을까?     


아이는 자신의 제안에 친구들이 직설적으로 “싫어.”라고 거절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좀 비유적 표현으로 말하면 마음이 덜 상한다고 했다. 여러 친구들이 있지만 유독 한 친구에게 마음이 기우는 이유는 거절을 부드럽게 해서라고 했다. 그 친구는 거절할 때 “그건 좀…….”이나 “점점점”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 싫다는 것은 자기가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듣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쾅 닫히는 문 같은 거절보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회전문 같은 거절이 좋은 것이었다.    


지인은 남편과의 대화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전에는 의견이 다를 때 늘 “그게 아니라~”라고 말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더 반감을 일으키며 자기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한다고 했다. 어느 날, 대화법은 바꾸었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그대로 두되 앞에 말만 다른 말을 했다. 그 단어는 “맞아”였다.     

“그게 아니라, 지금은 내가 시간이 없어.”

“그 말도 맞아. 그런데 지금은 내가 시간이 없어.”    


상대의 말에 “맞아.”라고 시작하면 자신에게 동조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뒤에 반대 의견을 제시해도 일단 거부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채 대화에 임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감정 상하는 일 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했다. 좋은 말 센스인 것 같았다.    


이렇게 거절을 할 때도 있지만 종종 거절을 당할 때도 있다. 나 역시 무수한 책 투고 메일에서 거절 메일을 받았었다. 신춘문예, 각종 공모전에서는 꽃잎처럼 많이 떨어졌다. 사람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에서의 거절이든 오랜 꿈을 품었던 공 모전에서의 거절이든 모든 거절은 쓰다. 마음이 배인 듯 아프다. 꿈을 향해 나아갈 때는 그 끝에 성공에 조착하기 전까지는 거절의 연속인 도미노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이 다음 거절, 그 뒤의 거절 다음 거절이 계속 있었다. 한 번에 쉽게 얻어지는 것은 흔하지 않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거절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로봇 과학자 데니스 홍이 <아이 러브 인>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로봇 공학자가 꿈인 방청객이 그가 있는 ‘로멜라 연구소’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연구소에 오고 싶다고 한 사람들이 전 세계에 너무 많아요. 하루에도 수많은 이메일을 받아요. 그들은 자기의 이력서, 프로젝트, 웹사이트 등의 화려한 경력을 첨부해서 이메일을 보내요. 하나의 힌트를 준다면 나에게 이메일이 오면 그 학생이 똑똑하던 안 똑똑하던 훌륭한 업적이 있든 내가 필요한 학생이던 필요하지 않은 학생이던 상과 없이 무조건 퇴자 이메일의 답장을 보내요.     


‘죄송합니다. 우리 연구소에는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보내는 줄 아세요? 우리 연구소에서 일할 사람으로 진짜로, 진정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학생들을 원해요. 그래서 이런 거절의 메시지에 떠나는 학생은 제가 원하지 않아요. 이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꼭 가야겠습니다. 교수님’    

하고 다시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그런 이메일들만 제가 봐요. 일일이 검토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메일을 보내세요. 거절의 답장이 가면 또다시 보내시면 됩니다.”   



우리는 거절하는 말과 거절당하는 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거절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피해 갈 수 없다. 데니스 홍의 말처럼 거절이 암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거절의 순간을 마주할 때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빠른 포기는 시간을 절약해 준다. 다른 방법도 있다. 거절을 딛고 또 다른 거절을 향해하는 것이다. 거절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건물마다 짧은 계단이 있고 긴 계단이 있다. 사람에게도 그렇게 저마다 다른 길이의 거절의 계단이 있을 뿐이다. 멈추지 않고 걸어가기만 하면 그 끝에 성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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