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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un 13. 2023

처음, 덕질하다

덕질의 끝은 어디인가?

좋은 엄마란

경험이 많아서 아이가 하는 것들을 온 맘 다해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주체적으로 흥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들이 생겼다. 노래, 게임, 화장, 덕질.

위의 네 가지 모두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맛있는 냉면을 사 먹거나, 이대 앞에 놀러 가 옷을 구경하는 게 다였다. 교복을 짧게 줄여 입은 적도 없었고, 흔히 가는 노래방도 좋아하지 않았고, 화장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다소 밋밋한 나의 학창 시절이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와 소통할 때 어려움이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 학창시절에 화장을 했던 내 친구는 딸아이에게 좋은 이왕 학생 때, 화장할 것 성분 좋은 걸 골라 주겠다고 했다. (너무 쿨해 보였다)


그중 아이와 자주 부딪히는 이슈는 덕질이었다. 모든 대화가 아이브의 가을언니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났다. 가을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 옷, 생일 등등 우리 둘의 모든 대화의 끝은 가을언니였다.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바람음 접어야 했다. 머릿속이 온통 가을언니로 들어차 다른 이야기는 들어설 틈이 없었다. 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푹 빠져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대화가 잘 되지 않아 속상했다.



허광한을 좋아하는 내 친구와 대화를 하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즘 린이가 아이브 포토카드 때문에 같은 CD를 얼마나 많이 사는지 몰라."

"당연히 사야지. 나도 허광한이 나온 잡지는 다 사."

"아니, 안에 내용물이 같은데, 하나만 사지 왜 계속 사는 거야? 듣지도 않는데..."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표지가 다른 버전이잖아?"


위로를 받고자 시작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또 다른 딸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덕질의 끝은 언제니?"

"무슨 소리야? 덕질은 끝이 없어."


덕질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맹목적인 사랑이 이해되지 않았다. 만날 수 없는 화면 속 대상보다는 내 곁에 있는 친구라던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의 모든 생활을 덕질로 시작해 덕질로 끝맺었다.


1. CD마다 다른 포토카드가 들어 있어 좋아하는 가을언니가 나올 확률이 낮았다. 그러니 계속 구입했다. 나올거라는 희망을 가지고....듣지도 않는 CD를 22장을 샀다. (말려도 소용없다. 몰래 사게 된다. 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사들의 이런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장의 CD에 멤버 전원의 카드를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누구의 카드가 있는지 명시되어야 하지 않는가? 청소년의 지갑은 누가 지켜주는가?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같다. 물론 그렇지 않는 소속사도 있다. 그런 곳은 박수^^)


2. 일본판 아이브 CD가 가지고 싶어 지인에게 부탁해 2개나 구입했다. (이번에도 역시 가을언니 포토카드가 나올 리 없었다. 다 다른 멤버였다.)


3. 어릴 때, 일본여행을 자주 가서 우리는 가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아이브 일본 CD를 꼭 가서, 사고 싶다며 계속 일본여행을 가자고 말한다. (결국 여름방학에 가기로 한다.)


3. 정품포토카드만 선호하기에 문방구에서 나온 포토카드 즉, 가품은 아티스트에게 피해가 가는 행위이므로 절대 사지 않고, 친구가 선물해 주어도 좋아하지 않는다. (도덕관념이 철저한 모습을 엿봄)


4. 어느 날은 학교에서 <나를 소개하는 물건>으로 포토카드 앨범을 가져갔는데 깜박 잊고 놓고 왔다. 그걸 금요일 저녁에 알아차리고 당장 가야겠다며 밤에 학교에 가자고 했다. 내일 아침에 찾으라고 말해도 없어질까 안된다며 결국 학교를 찾았고, 학교 문은 닫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교실에 방문해서 찾았다.


5. 가족모임이 있던 날이었는데, 런닝맨에 아이브가 나오는 걸 꼭 봐야 한다며 약속을 점심으로 바꾸었다.

(모든게 아이브 중심으로 돌아간다.)


6. 친구가 몇 년 만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놀러 왔다. 다 같이 한강에 모여 놀고 있는데, 그날이 아이브 공식굿즈가 출시되는 날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렸는지 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아 굿즈를 살 수 없게 되자, 눈물을 터트리며 그날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7. 아이브가 광고하는 파파존스는 꼭 먹어야 한다.



8. 아이브가 광고하는 옥수수수염차를 한 박스를 시켰다. 날마다 학교에 가져가 먹는다.



폴람이 인형


9. 아이브 팬들이 만든 폴람이 인형이 있는데, 그것이 이미 다 팔린 상태였다. 너무 갖고 싶었는지 처음에는 그와 비슷한 사서 놀다가 중고거래 시장에 나온 인형(4만 원)을 구입했다.


----> 그 순간 기회비용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기에.... 그 인형을 사는 대신에 한 달간 물건을 사지 않고 참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 인형이 너무 갖고 싶었는지 제안을 받아들였다.


쭉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해는 아니었다. 밤늦게 학교를 간다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울거나 자기를 컨트롤 하지 못하는 모습에 속이 상했다.


왜 덕질에 중간은 없을까?

좋아하는 마음은 왜 평정심을 찾기 어려울까?



엄마로서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 달간의 쇼핑금지기간 동안 아이에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 아이가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작은 쇼핑금지가 끝나면 원하는 것을 살 마음이었다.  집안일 아르바이트 메뉴로는 분리수거하기 2000원, 식기세척기 돌리기 2000원, 빨래 개기 1000원, 화장실청소 5000원이었다. 그중 아이는 가장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 화장실청소만 골라했다. (고효율을 생각함) 집 안의 양 쪽 화장실 다 해서 엄마, 아빠에게 5천 원씩 한 번에 1만 원을 받았다. 그러자 돈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


2. CD를 계속 사도 원하는 것이 나오니 않는다는 것을 그 기간 동안 깨달았다. 처음에는 당근마켓으로 가을언지 포토카드를 파는 사람을 만나러 가도 되냐고 하길래? 아직은 어려서 직거래는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3. 그러자 택배로 보내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었다. 택배거래는 안전하니 스스로 반택을 보내는 방법을 유튜브로 익혀 편의점에 찾아가 택배를 보내고, 받았왔다. 우리에게도 택배 보낼 일 있으면 자신에게 맡기라며 당부했다.




4. 모든 용돈을 CD나 아이브 굿즈에 썼기에 옷이나 가방 등 자신을 꾸미는 일에는 소홀했다. 옷의 색을 매치하기보다는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입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 입지 않는 치마를 사달라고 했다. 가을언니의 옷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그렇게 입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변화가 반가웠다. 원하는 대로 옷을 사고 학교에 입고 간 날, 친구들이 패셔니스타 같다고 했다.


5. 친구들끼리 모여 아이브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학교 강당의 문을 열고 등장한다던가, 공원에서 단체로 춤을 춘다던가 아이들 스스로 기획해 촬영, 편집까지 해서 완성했다.


6. 학교 축제에서 아이브 춤을 추었다. 아이가 내향형이라 전교생 앞에 나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이브 노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모여 공원에서 연습을 하며 무대에 올랐다.


/



덕질에도 스스로 경험해 보는 인풋이 있었고, 덕질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아웃풋이 있었다. 모든 생활이 덕질에만 집중되었던 시기에 엄마인 나는 무척 애가 타고, 자주 부딪혔다. 그러나 그 터널을 지나 온 지금 아이 스스로 용돈을 벌고, 택배를 보내고, 무대에서 춤을 추고, 옷을 멋지게 입는 등의 모습을 보며 덕질에도 순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아이브의 가을언니와 아이의 콜라보였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만난 적 없는 가을언니가 한다. 가을언니는 아이의 과외 선생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마음을 나눌 언니가 된다.



좋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문학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시 읽기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은 좋아하면 스스로 하게 된다. <동시발전소 17호 중>


아이가 가을언니를 좋아하더니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한다. 문학교육의 역할을 가을언니가 한 것이다. 덕질을 하지 않는 엄마가 덕질에 빠진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길을 내어 줄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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