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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un 12. 2023

처음, 먹으며 기상하다

어릴 때, 잘 일어나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서는 잘 일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평일에는 등교시간에 맞춰 잘 일어나기에, 다행이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나는 아이가 주 5일 일찍 일어났기에, 주말에는 늦잠을 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너무 늦게까지는 자지 않았으면 해서 아이를 깨웠다. 자기가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아침 일찍 깨웠고, 더 자고 싶어도 아침밥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런 습관이 있어서인지, 늦잠 자는 아이를 향해 강압적이진 않지만 잔잔하게 여러 번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날은 10시가 넘은 주말이었다. 남편과 나는 간단하게 스팸, 계란김밥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렸다. 나는 속으로 린이도 이제 일어나서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안 그러면 밥을 두 번 차려야 했다.


인생의 고민은 이렇게 사소하다. 더 자게 하고 싶은 마음과 같이 식사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안에서 충돌한다. 그래도 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어릴 때, 밥보다 잠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충분히 자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형 인간인 남편은 주말에도 늦잠을 자는 법이 없다. 그날도 벌써 운동을 다녀온 후였다.


"린아 일어나야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깨웠다. 문제는 부드럽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몇 번 반복되는 말에 아이든, 남편이든 언성이 높아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잠시 뒤, 남편은 스팸김밥 하나를 들고 아이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린아 스팸김밥 먹어."라면 입술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아이는 웃음이 터졌다. 눈을 감고 입을 벌려 스팸김밥을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씹다 보니 잠이 깼는지, 자발적으로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남편의 맛있는 설득은 성공이었다.


깨우는 방법이 탁월했다. 아이는 삼시세끼 중 아침을 제일 잘 먹는다. 나는 일어나서 입맛이 별로 없어 한 시간은 지나고 먹는 타입인데, 아이는 눈 뜨자마자 물도 안 마시고 샌드위치면 샌드위치, 죽이면 죽, 된장찌개면 된장찌개 다 잘 먹었다. 희한하게 점심 저녁은 느리게 먹는데, 아침만은 신속하게 잘 먹는다.


만약 아침밥을 잘 안 먹는 아이에게 그랬다면 아이를 깨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잠이 깨지도 안은채 밥을 먹는 아이에게는 아주 잘 맞는 방법이었다.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면 상대의 특징을 잘 파악해서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률이 높아진다.  


남편의 위트가 아이를 일어나게 했다. 덕분에 우리는 얼굴 붉히지 않고, 평화롭게 세 명이 아침밥을 함께할 수 있었다. 다음에도 사춘기 아이에게 같은 방법이 먹힐까?


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렇게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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