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Oct 23. 2024

미스터 엘리베이터씨

1. 기다림

현관문을 나와 바로 한 발을 떼는 것보다 기다림으로 시작했다. 내가 살던 23층의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 두 대가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바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주택의 삶과는 다르게 아파트의 삶은 늘 기다려야 했다. 운이 좋으면 엘리베이터는 10층 언저리에 있었고, 운이 나쁘면 지하에 가 있었다. 내 앞에 탄 사람이 몇 층에서 타고, 내렸느냐에 따라 기다림의 길이가 달라졌다. 앞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는 걸, 날마다 실감했다.   

   

2. 두려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누군가 타고 있을까 두렵다. 내 앞에 도착한 문이 3,2,1 열리면, 바닥에 둔 시선으로 재빨리 발이 있는지 확인한다. 안에 사람이 없으면 두렵던 마음은 도망치고 잠깐의 평온이 찾아온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낯선 사람과 작은 공간에서 몇 초의 시간을 공유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엘리베이터를 통해 알게 된다. 그것이 작은 스트레스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자 방법이 필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안에 사람이 있다면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불편했다. 그렇다면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하자. 안 하고 어색한 것보다는 먼저 인사를 하고 마음이 편한 것을 택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다이소 쇼핑 / 뮤겟 바닐라 향수 3000원


3. 커다란 향수

가끔 엘리베이터 안 공간은 향기로 가득 찬다. 저녁이면 치킨 냄새가 가득하고(먹고 싶다) 한낮이면 음식물 쓰레기 냄새, 땀 냄새가 난다. 때로는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와 싱그러운 샴푸 향이 나기도 한다. 다음 사람에게 엘리베이터는 커다란 향수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섰는데, 어느 날은 내 몸에 치킨 냄새가 묻고, 어떤 날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코팅되기 때문이다. 그날의 향에 따라 내 기분의 향기도 달라진다.      



4.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피규어

병원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다. 그 안에는 식당에서 본 것 같은 플라스틱 의자가 있었다. 잠깐이지만 다리가 아픈 환자들이 앉아갈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무언가를 놓을 수도 있다니?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카페 안의 엘리베이터 안에는 미니 테이블이 있었다. 빵도 함께 팔았기에 쟁반에 빵과 커피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흔들리는 음료와 빵은 엘리베이터 속 테이블로 인해 편하게 들고 갈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작은 물건을 발견했다. 손잡이를 연결하는 봉 사이에 평편한 곳에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서 누군가 흘리고 간 흔적이 아니었다. 피카츄 장난감 두 개가 나란히 있는 풍경은 작은 미술 전시회를 연상시켰다. 무색무취의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말랑말랑하게 변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위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철로 만든 물건일 뿐이지만, 한 명의 사람 같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과 두려움과 반가움의 감정을 나누고, 가끔 자기 몸에 향수를 뿌리기도 하며, 만난 사람들을 배려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매력적인 미스터 엘리베이터씨. 나는 날마다 그를 만난다.           

이전 14화 키링을 8개나 달고 다니는 이유가 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