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달리기 해요.”
“고모, 다리에 멍들어서 달리기 못해.”
“고모 달리기 해요.”
“고모 허리디스크라 못 뛰어.”
조카는 나를 볼 때마다 달리기 하자고 했고, 난 거절했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이유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 생신으로 다 같이 갈비를 먹고, 광명역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축구장 넓이의 커다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연령층이 다양한 가족이 모이면 마땅히 할 놀이가 없어서, 내가 은채에게 달리기 하자고 제안했다. ‘7살이 뛰면 얼마나 뛰겠어? 살살 봐주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은채는 출발선에서 달리기 포즈를 잡았다.
“준비 시작!”
한여름의 달리기가 시작했다. 은채는 쓰고 있는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있는 힘껏 달렸다. 생각보다 잘 달리는 은채를 보며 당황했지만, 어른인 내가 속력을 내면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제안한 일 아닌가? 결승선 앞에서 나는 속도를 줄였다. 이길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 아이의 승리였다. 은채는 나를 한 번 보더니 물장구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나이에는 고모가 져 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은채 달리기 정말 잘한다.”
“고모 사실은 학교 다닐 때도 달리기 잘 못 해서 늘 꼴찌였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은채는 여전히 수줍음이 많아 늘 엄마 뒤에 숨어 나를 보았는데, 그날은 턱을 높이 올려 말했다.
“어른이 나보다 달리기를 못하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은채는 달리기 하자고 했다. 고모부도 안되고, 언니도 안되고, 자기 오빠도 안되고 꼭 나여야만 했다. 좀 커서는 진짜 지겠다 싶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다. 은채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은채 반에서 달리기 일등이에요. 저번에 체육대회 날 아파서 선생님께 못 간다고 연락드렸거든요. 담임 선생님이 은채 빠지면 안 된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그 정도야? 몰랐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은채가 이렇게 달리기를 잘하게 된 건, 나와의 대결 덕분이 아닐까? 어릴 때의 작은 성취는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도 초 3, 수업 시간에 들은 선생님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대학의 목표를 시각디자인과로 정한 것도 그 시절 친척 언니가 미대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삶의 변화는 거대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정육점 아저씨의 말 한마디와 드라마에서 본 한 장면처럼 작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7살의 은채와 나의 달리기 시합은 ‘난 어른도 이긴 사람이야. 그러니 반 친구들, 누구라도 이길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을 수도 있다. 아이도 모르는 재능 발견의 시작을 고모가 기록한다.
어쩌면 은채가 전국체전에 나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