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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25. 2024

솜사탕이 하늘에서 내리면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작은 구름이 젓가락에 꽂혀 있었다. 솜사탕 아저씨가 컬러풀한 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없는 날에는 그저 핑크색 구름을 쳐다만 보고 있어야 했다. 친구가 산 솜사탕을 함께 나눠 먹자고 말하면 순식간에 마음이 화사해졌다. 두 손가락으로 주욱 잡아당기면 솜사탕이 돌돌돌 풀렸다. 달콤함도 잠시, 입이라는 바다에서 솜사탕은 파도처럼 금세 부서졌다.


어른이 되면서는 솜사탕과 점점 멀어졌다. 손에 묻는 설탕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런 솜사탕을 다시 사랑하게 된 건 딸이 태어나고,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였다. 아이는 놀이동산에 가면 꼭 솜사탕을 사달라고 했다. 요즘의 솜사탕은 예술적이었다. 솜사탕이 토끼도 되었다가, 오리도 되었다가, 겨울에는 눈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솜사탕은 자신의 얼굴에 표정을 만들었다. 밤이 되면 솜사탕은 빛을 품어 행성이 되기도 했다. 막대에 불을 켜서 어두운 밤에 동그란 빛을 만들었다.


아이가 7살 때, 오사카의 덴노지 동물원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동물들이 아니었다. 동물원 한쪽에 놓인 모자 쓴 커다란 강아지, 곰돌이 모형의 기계였다. 저건 뭘 하는 걸까 궁금해서 다가가, 몸통 부분에 투명한 문을 열어보니, 설탕 가루가 묻어있었다. 솜사탕을 만드는 기계였다. ‘내가 솜사탕을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지금은 흔한 방식이지만 8년 전에는 신문물을 만난 듯 놀라웠다.  동전을 넣자,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강아지의 가슴 부분의 둥근 창문을 열자, 하얀 연기가 나왔다. 통에서 젓가락 하나를 뽑아 통 안으로 가져갔다. 피어오르는 솜사탕을 모으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무젓가락에 달라붙는 것보다 스쳐 날아가는 솜사탕이 더 많았다. 짧은 시간이 끝나고 완성된 솜사탕은 아기 솜사탕처럼 작았다. 모양도 울퉁불퉁했다. 우리가 만든 첫 솜사탕의 모양을 보고 웃음이 났다. 볼품없었지만, 살면서 먹어 본 솜사탕 중 제일 맛있었다. 직접 만들어서였다.


만약에 덴노지 동물원에 가지 않았다면 평생 누가 만들어 준 솜사탕만 먹었을 것이다. 솜사탕 기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 뻔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소비로 이어졌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솜사탕 기계를 검색했다. 휴대용 솜사탕 기계가 존재했다. 날마다 솜사탕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집 안으로 학교 앞 솜사탕 아저씨를 초대한 것 같았다. 도착한 기계를 깨끗하게 씻어 말리고 가운데 홈에 설탕을 솔솔솔 뿌렸다. 작동 버튼을 누르자 하얀색의 설탕 띠가 훌라후프를 하듯 원을 그리며 나왔다. 덴노지 동물원에서 한 번 해봤다고, 좀 익숙했다. 오른쪽으로 젓가락을 돌돌 돌리자 솜사탕의 부피가 켜졌고, 우리의 미소도 커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이었다.


“그만, 그만, 그만.”



미처 예기치 못한 반전은 행복의 순간에 세트처럼 다가왔다. 동물원의 솜사탕 기계는 원통형으로 천장이 막혀 있었는데, 우리가 산 솜사탕 기계는 오픈형으로, 이탈한 솜사탕은 집 천장으로 날아갔다. 솜사탕 하나를 만들면 천장을 청소해야 했다. 그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집 안에서 우산을 쓰고 솜사탕을 만들었다. 우산은 천장으로 날아가는 솜사탕을 막았다. 다만 우산에 솜사탕이 묻었다. 결국, 솜사탕 기계는 야외에서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현실의 벽이 높아지면서 솜사탕 기계는 창고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솜사탕 기계 이벤트는 짧게 막을 내렸지만, 솜사탕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솜사탕에 호기심이 생겼다. 껌 솜사탕, 무지개 솜사탕, 사이다, 콜라 맛 솜사탕, 치즈케이크 솜사탕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솜사탕마다 혀에서 녹는 감촉이 달랐다.



다이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작은 사이즈이지만 솜사탕이 있는 매장도 곳곳에 있었다. (매장마다 다 있지는 않다. ) 그동안 먹어본 솜사탕 중 명품 솜사탕을 꼽으라면, 아쉽게도 다이소에 파는 솜사탕은 아니다. 바로 무인양품의 솜사탕. 혀를 강압적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구스 이불처럼 덮은 듯 안 덮은 듯 가볍게 스며든다. 적당히 달면서 인공적이지 않은 본연의 맛이 특징이고, 먹어도 먹어도 처음 먹는 듯 감동적이다. 솜사탕에도 격이 있다는 알게 된다.           




오늘의 다이소 쇼핑 _ 안녕 자두야 솜사탕 /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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