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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23. 2022

내 세계가 넓어지고 있어

아이의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떡볶이 데이트를 했다. 자리에 앉아 좋아하는 치즈 떡볶이를 시켰다. 보통 한 종류의 치즈만 얹혀서 나오는데, 이곳은 하얀색의 모차렐라 치즈와 노란색의 체다 치즈가 함께 나와 맛이 더 풍요로웠다.




곧, 많은 학생들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네 명이서 자가용을 주차하듯, 자전거를 길가에 대고 들어왔다. 밖에서 자기들끼리 다 논의를 했는지 주문을 시작한다.


"떡볶이 2개랑요.

음료수 2개랑, 종이컵 3개요."


종이컵까지 주문하는 모습에 떡볶이를 먹다가 빨강 웃음이 튀어나왔다.


"계산 지금 해주세요."

옆에 있던 아이가

"아니야, 있다가 하자."

라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가 지금 해야 한댔어."

라고 말하며 결재를 했다.


잠시 뒤,

가게 밖, 길가에 들어선 엄마의 차로 달려가 카드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본 12살의 딸이

"우리 잼민이들. 귀엽네."라고 말했다.


몇 살 차이 안나는데 귀여워하는 모습이 더 귀여웠다.


"요즘은 어린애들 보면 나 때는 말이야. 가 절로 나와. 엄마 아빠가 할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내가 그 상황이 되니까 막 내 얘기를 해주고 싶더라고..."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지?"


아이의 라떼 이야기가 왠지 반가웠다.

좋아하는 떡볶이를 오물오물 씹다가 기분이 좋았는지 자기의 근황 이야기를 시작했다.


"5학년이 되니까, 뭔가 세계가 확 넓어졌어. "

"그래? 세계가 넓어졌어?"

"응. 1,2,3, 4학년 때까지는 큰 변화를 못 느꼈는데, 5학년이 되니까 확 바뀌더라고..."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바꼈는대?"


"일단 애들이 욕을 많이 써. 4학년 때는 욕 쓰는 애들이 별로 없었는데, 5학년이 되니까 여기, 저기 욕이 많이 들려. 그리고 두 번째로는 4학년 때는 친한 애, 안 친한 애 나뉘어 놀았거든. 그래서 안 친한 애들이랑은 별로 대화를 안 했어. 그런데 5학년이 되니까, 친하든, 안 친하든 서로 막 농담하고 놀리고 그래."


"어떤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기인가 보다. 그지?"


"애들이 배려가 사라졌어. 상대를 배려해서 말하기보다는 신경 안 쓰고, 막 자기 얘기를 해."


아이의 입을 통해 자기 또래의 변화를 듣는데,

난 자꾸 '그래서 네가 그랬구나.'라며 깨달음을 얻었다.


집에서도 아이는 말이 거침없어지고, 자기표현이 확 늘고, 본인의 기분은 다 표현하며, 나를 배려하여 경청하기보다는 자기주장에 강하게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확장된 세계로 진입했기 때문이었다니...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궁금했던 미결사건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종알종알거리는 편안한 떡볶이 수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큰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있어."


나는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식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언제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줄어들었는지, 또는 정체되어 있었는지 인지한 적이 없었다.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네.

세상에 벽이 많네.

왜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지.

운이 좋다.

흐름이 좋아

등등의 외부적인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언어를 사용했다.



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보이지도 않아 스스로 깨닫기 어려웠다. 몸의 성장은 눈에 '탁탁' 보이는 것이어서 생각할 필요 없었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아 얼마나 컸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큰 게 맞을까?)


그런 점에서 아이가 스스로의 세계가 확장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자기인식의 순간으로

진정한 성장이었다.


문득 살면서 나의 세계를 내가 알아차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큐 검사는 중요하게 생각하며 가끔 해보기도 하지만, 마음의 성장은 주기적으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내가 성장하려면 나를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다. 내 안의 그래프에 점을 촘촘히 찍고 선으로 연결해야 보였다. 어른이 되면서 이런 과정이 내게 빠져 있다를 걸 깨달았다.


분명 어른들 중에서도 본인을 잘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언제 성장하기 위해 속력을 내야 하는지, 언제 쉬어야 하는지, 지금은 정체 구간이니 조금 멈추었다가 힘을 내보자. 라며 본인의 마음에 에너지를 주유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아이의 말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망원경으로 바라본 사람이 아닐까?



이제

우주 밖의 별을 보던 망원경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내 안의 우주를 봐야겠다.


나도 모르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이제는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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