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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드로잉

by 하하연

“계절마다 옷을 사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거야 입을 옷이 없으니까. 옷장에 옷은 많은데 늘 입을 게 없으니까.”

“그 이유도 맞는데, 나는 매 계절 옷을 사는 일은 나를 업데이트하는 거라고 생각해. 새 옷을 입으며 올해의 나를 새롭게 하는 거지.”


S와의 대화였습니다. 왜 옷은 매해 사도 해가 바뀌면 입을 게 없는지 궁금했는데, 친구의 말에 수긍이 가더군요. 컴퓨터도 켤 때마다 업데이트를 하라고 하는데 사람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했습니다. S는 새 옷을 입으면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옷을 사야 하는 이유가 단지 멋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옷을 또 사? 코트 많잖아.’라고 책망하던 마음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20대에는 나에게만 돈을 쓸 수 있었습니다. 옷, 가방, 신발, 액세서리를 잔뜩 샀죠. 하루도 같은 옷을 입은 적 없었고, 나뭇잎의 색을 보며 계절을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쇼윈도의 패션의 색을 바라보며 계절을 만끽했습니다. 내가 나무가 되었고, 옷은 나뭇잎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회사 생활도 하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많았기에 나를 꾸미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름에는 라피아 했을 종류별로 샀고, 겨울에는 색깔별로 베레모, 비니를 샀습니다. 미묘하게 다른 진주 목걸이의 세계에도 빠져 보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패턴에 감탄하며 스카프도 샀습니다. 사고 또 사도 늘 새로운 옷들은 멈추지 않는 파도 같이 다가왔습니다. 계속 사라고 속삭이는 파도를 외면하기 시작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를 위해 쓰던 돈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를 위한 육아용품과 식비, 관리비, 집의 대출이자 등에 돈을 쓰고 나면 나에게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없었습니다. 몇 번의 커피와 책만 조금 나에게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주춤거리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어쩌다 보너스가 생겨도 기회비용을 생각하느라 잘 쓰지 못했습니다. 미래에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니까 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욕망이란 누를 순 있어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옷처럼 예쁜 것을 사고 싶은 마음을 귀여운 아이의 물건으로 대체했습니다. 파스텔톤의 장난감과 원목으로 된 오르골 등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초록색의 레이스로 된 아기 옷을 고를 때면, 내 옷을 사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앙증맞은 크기의 옷들은 어른의 옷과는 다르게 인형 옷 같았죠. 나를 꾸미지 못하는 슬픔이 아이 옷의 환희로 덮였습니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자, 학원비가 생활비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뛰어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비가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에 필요한 예체능 수업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수업을 듣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들어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자 제가 학원을 보내려 하지 않아도 아이가 학원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야 겨우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한 과목이 아니라 여러 과목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건 제가 예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아이가 부모의 의견에 따르지만, 중학교 이후부터는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EBS를 보며 혼자 공부하라고 타일러 보고, 시도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학원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의 바람을 무시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생활비 안에서 학원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물가처럼 학원비가 얼마나 비싼지 한숨만 계속 나왔습니다. 결국 다른 비용을 절약하고 아이를 학원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아이는 더 좋은 학원을 원하고, 저는 이것만으로도 생활비에서 벅찬 상황이었습니다. 모두가 서로 완벽하게 만족하는 삶은 없으니, 이 또한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지출은 늘고, 생활비는 줄어들었습니다. 소비욕은 나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지갑이 얇아도 사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두꺼웠습니다. 여전히 파도는 세차게 밀려왔습니다. 김나영이 든 가방, 알지도 못하는 유튜버가 신은 신발, 친구의 귀걸이 등 사고 싶은 것 투성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생각한 기록 아이디어는 <일단 그리기>였습니다. 나이키 로고에 레이스가 달린 하늘색 운동화를 보자, 사고 싶었습니다. 일단 숨을 고르고 사진을 찍습니다. COS 매장에서 본 투명 구슬이 대롱대롱 매달린 귀걸이를 보자, 사고 싶었습니다. 또 숨을 고르고, 사진을 찍습니다. 저녁에 노트를 펼쳐서 아까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그립니다. 그리고 된장을 담그듯 묵혀둡니다. 일주일 뒤, 여전히 그림을 보고도 사고 싶다면 그때 구입합니다. 소비욕구를 노트라는 거름망에 걸러 진짜 마음만 남겨둡니다. 어떤 물건은 사고 싶은 마음이 시들해지기도 하고, 어떤 물건은 더 강렬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차의 힘으로 물건을 욕망을 걸러냅니다.


이 방법을 이용한 후로는 후회하는 소비는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물론 뒤늦게 사려고 하면 품절로 살 수 없게 되는 장점? 도 있습니다.


소비의 시대. <일단 그리기>를 해볼까요? 그러면 소중한 내 지갑을 지킬 수 있습니다.





* 기록해 볼까요? 장바구니 드로잉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마다 바로 사지 않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사진을 찍어서 노트의 한 페이지에 물건들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도 계속 생각나면 그 물건은 사고, 생각나지 않는 것들은 사지 않아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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