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욕망빙고

by 하하연

한동안 방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낯선 곳으로 이사 후, 남편과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부모가 함께 양육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게 더 중요하다며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을 만나는데 할애했습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의견 속에서 저는 무기력해졌습니다. 큰 소리로 싸워도 보고, 혼자 잠시 집을 떠나기도 하는 등 강하게 의견을 표현했지만 남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부부가 공존하는 법은 제가 포기하는 일인데, 포기가 안되더군요. 어떤 의견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반복되자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방에 있다가 밤이 되면 21층 아파트 밖으로 뛰어내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았던 미움이 시간이 흐르자 커다랗게 굴러, 낭떠러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장을 보러 나가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며칠째 씻지도 않고 방 안에만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책도 삶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싶고, 입맛을 잃어 그 어떤 것도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매일 한 잔씩 마시던 커피우유도 찾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남편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시들어가는 나를 방치하며 자신의 꿈과 미래를 쫓는 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일 년 정도 지속되었던 갈등은 코로나로 종결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밖의 생활이 단절되자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깊게 파인 마음의 상처는 흉터로 남았지만 우울증은 삶의 교훈을 하나 남겨 놓았습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세상을 사는 힘이었습니다. 몇 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지내다 보니,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죠. 떡볶이가 먹고 싶고, 드라마가 보고 싶고, 책과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은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삶을 주체적이고 에너지 있게 살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사고 싶은 것이 많고, 가고 싶은 여행지가 많아져서 그게 걱정인 요즘. 우울증을 않던 때를 생각합니다.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하자. 마음속은 여름처럼 싱그럽다는 증거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록을 하면서 전국 곳곳에 아름다운 문구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멀더라도 가고 싶은 곳을 노트에 적습니다. 재미를 더해 아홉 칸을 만들어 그 안에 적습니다. 욕망 빙고를 만드는 것이죠. 한 달의 한 곳 씩, 가보고 싶은 곳을 가봅니다. 다녀와서 빙고칸에 스티커를 붙입니다. 욕망빙고로 공간 편뿐 아니라, 간식, 읽고 싶은 책을 채워 넣어도 좋아요. 각자의 욕망에 귀 기울이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 기록해 볼까요? 욕망 빙고

가고 싶은 여행지, 만나고 싶은 사람들, 먹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욕망빙고에 적어보고 하나씩 해 보세요.

keyword
이전 01화삶의 모순적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