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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30. 2022

남편에게 말대꾸하며  아이의 말대꾸를 이해하다


아이의 말대꾸를 이해하게 된 건 남편에게 말대꾸를 하면서였다.



여름이 떠났다가 무얼 놓고 갔는지 뒷걸음질 쳤다. 가을이 온 줄 알고, 긴 팔을 꺼내 입었는데 집 안에서부터 땀이 줄줄줄 났다. 다시 반팔로 갈아입었지만 소용없었다. 외출하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아서,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틀자고 했다.


검소한 남편이

"30분 뒤면 나가는데, 에어컨을 켠다고? 좀 참아."


"여보, 너무 더워. 잠깐이라도 시원하게 있자. 30 에어컨 틀면 전기비 얼마 나오는데? 만원? 내가 줄게. 너무 더워.”


"금방 나갈 건데.."


"이제 가을, 겨울 에어컨 안 쓰는데, 지금 잠깐 써도 괜찮아. 안 쓰고 아끼면 뭐해? 죽을 때 무덤에 에어컨 넣어갈 것도 아니고... 에어컨을 쓰라고 산거잖아."


"아빠, 나중에 제사 지낼 때, 제사상 위에 에어컨 놓아줘?"


옆에서 같이 땀을 흘리는 딸도 에어컨을 켜길 바랐다.


나와 딸의 말대꾸로 남편은 웃음을 터트렸다. 에어컨 틀지 말자는 의견 하나로 자기 제사상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웃긴 모양이었다. 극 과장으로 치닫는 마음 표현덕에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만날 수 있었다.


가족 중 땀을 제일 많이 흘리는 남편이 제일 시원해했다.


아이의 말대꾸에 속상할 때가 많았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얌체공처럼 톡톡 받아내니, 이건 의견을 떠나 그냥 나에게 대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말대꾸를 하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의견이 나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니 본능적으로 내 의사를 피력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다. 남편이라는 사람보다는 그 상황에서 에어컨을 못 켜게 하는 행동에 반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이가 했던 무수한 말대꾸도 나에 대한 삐딱하고, 반항적인 태도가 아니라, 본인의 의견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남편이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했다고 삐져서 꽁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오랫동안 서운한 감정에 다른 일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에 바로  자리에서 말대꾸를 함으로써 마음이 바로 전해졌고, 에어컨을   있었다. 문제가 해결되고, 갈등이 해소되었다. 말대꾸는 소통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말대꾸는 아이만 하는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직접 해보니 어른에게도 말대꾸가 필요했다.


말대꾸는 상대의 기준에서 말대꾸지,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일일 뿐이다.


사전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서술한다.


말대꾸란?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제 의사를 나타냄. 또는 그 말
<표준국어대사전>



정의를 보고 있자니 말대꾸가 말대꾸가 된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의 의사를 나타내는 것은 괜찮은데, 남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라는 타이밍이 문제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의사를 말하는 것이 언짢아 말대꾸가 된 것은 아닐까?


감정을 가라앉힌 후, 시간차를 두고 내 의견을 천천히 말한다면 아마 '말대꾸'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말대꾸를 직접 해보니, 상대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고, 억울하고, 감정적으로 흥분이 되었다. 그래서 고운 말 대신 과격한 말이 빠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다 보니, 대답 대신, 대화 대신, 말대꾸가 되었다.



말대답을 하며 말대답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러는 이유를 이제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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