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집여자였다. -1. 옥희배상 -1 -2

1. 옥희배상 -1 -2

by 이규만

1. 옥희배상 -1 -2

-너 처음이야? 너 같이 우는 애는 첨 봤어. 여기에도 이런 애가 있긴 있구나. 다음에 오면 너랑 또 만나고 싶어.

일부 눈물은 그대로 입으로 받아 삼켰다. 짠 내가 났다. 막 뱉어버릴 고약한 가래침을 꾹꾹 그대로 참아 넘겼다. 눈물이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흘러내리니까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다.

그는 옷을 챙겨 입었다. 양복 속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에서 십만 원짜리 수표 석 장을 꺼내 침대 옆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흡족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키스하고 나갔다.

계속 울었다. 고통을 남자한테 말해주고 싶었다. 그 정도만 하란 말이야. 그만. 넌 내가 좋아서 이 짓을 하는 줄 알아? 몸이 한동안 부서질 대로 부서졌다.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언니. 제발 부탁이야. 그만두게 좀 해줘.”

“아. 글쎄 안 된다니까. 너 그동안 사채 당겨 쓴 거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일부만 좀 갚으면 안 돼?”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 날 일이 아니라니까.”

옥희 언니는 인상을 찌그렸다. 계약 파기야. 위약금의 세배를 물어야 해. 억지를 쓰는 말로 들렸다. 너 지난번에 2차도 안 나가서 얼마나 많이 손해 봤는지 알아? 그놈의 2차. 그것 좀 안 하면 안 되나. 남자는 술기운에 그 짓이 그렇게 하고 싶은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계약서대로 이행해야지.”

“나는 거기다 서명한 적이 없어.”

그녀는 금고에서 두꺼운 서류철을 꺼내 책상 위에 거칠게 던져 놓았다. 보라니까. 보면 알 것 아니야. 서류철의 한 부분을 펼쳐 가리켰다. 틀림없는 내 필적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읽어보지도 않은 계약서에 내 서명이라니. 옥희 언니가 수없이 연습해서 베껴 놓은 것은 아닐까.

“여기서는 내 말이 곧 법이야. 내가 한 번 안 된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알아들어? 몸이 안 좋으면 병원에 다녀. 얼마든지 그 시간은 줄 테니까. 나도 네가 이럴 때마다 애처로워. 힘든 거 모르는 거 아냐. 이 길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어떻게 하겠어. 해야지. 그만둬봤자 또 넌 같은 일을 하게 될 테니까.”

“그래도…. 흑흑.”

힘들어서 정말 못 하겠어. 속말은 입가로만 돌았다. 종전보다는 언니의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졌다.

“같이 이겨 내보자.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을 거야.”

글쎄. 그날이 언제일까. 좋은 날이 언제 올까. 오기는 오는 거야. 막막함에 눈물이 터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백 팩에 돈을 현금으로 잔뜩 가져와서 지금 대기실 여자들 다 들어오라고 하는 거야. 열 명도 더 돼. 그러면 자기 혼자 열 명의 여자를 죽 앉혀놓고 일단 가방을 열어서 돈을 보여줘. 그리고는‘나, 이 돈 오늘 여기서 다 쓰고 갈 거야. 그러니 나 재미있게 해 줘.’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 행위를 시키는 거야.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하라는 거지. 그게 정말 힘들어. 파트너 하고 놀면서 하면 그럴 수도 있는데 여자들끼리만 있는데 그 남자 한 사람 보라고 그 짓을 못 하겠더라고. 중간에 나오는 애가 많지. 그럼 그 돈 못 받아. 참고 견디는 애들은 좀 받아 나오고.

‘지명’이 왔는데 돈 많은 단골이었대. 근데 자기가 일이 있어서 다른 여자애가 들어갔다는 거야. 남자가 술 먹고 취해서 팁을 줬대. 그래서 받아 가자고 집에 갔는데 나중에 보니 십만 원짜리 수표가 아니고 일억 원짜리 수표였다는 거야. 놀라서 손님을 수소문했더니 남자가 말하기를 ‘내가 그 돈을 찾아가면 여자에게 준 돈을 뺏는 것 같아서 못 찾아가겠다.’라고 그러더래. 그리고는 수표 정지도 시키지 않고 연락도 안 하더라는 거야. 그 애 당장 술집 그만뒀잖아. 집 늘리고 차도 빵빵한 거로 새로 사고. 나는 누가 안 사주나?

호텔에 가기 전에 여자한테 과일을 잔뜩 사 오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는 침대 모서리에 앉히고 자기는 커튼 뒤에 숨었다가 커튼을 젖히면서 ‘까꿍’하면 아가씨가 남자 몸에 과일을 던져서 맞히는 거야. 밤새도록 그 짓만 하는 거지.
과일이 떨어지면 ‘까꿍’할 때마다 여자가‘씩’ 웃어주는 거야. 한 번 웃을 때마다 만 원 준다잖아.
술 잔뜩 취해서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면서 손님이 굳이 2차를 가겠다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어. 호텔에 들어갔는데, 가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더라고. 근데 씻는 소리가 아니고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는 거야.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봤더니 그렇게 술 취한 상태에서 비아그라를 먹고 있더라고. 물이 없으니까 수돗물을 손으로 받아서 먹고 있는 거야. 비아그라 먹고 하는 사람들 정말 싫어. 얼마나 힘든데.
나는 먹어봤어.
정말?
반쪽씩 나눠 먹었다. 그랬더니 ‘와’ 엄청나게 흥분되더라고. 친구는 아무 반응이 없다는데 나는 미치겠더라고.
요즘은 여자 비아그라도 있다면서. 나는 그런 거 싫은데.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섹스는 별로야.

아직 몰라서 그래.


대기실이 소란스러웠다. 언니가 나랑 이야기하다 말고 여자들 틈바귀를 천천히 헤집고 들어가더니 한 애 앞에 섰다. 재연이었다. 그녀가 언니를 보자마자 손에 들린 옷을 흔들었다.

“언니 나 이것 사는데 카드 할부로 긁었다. 돈 좀 보태주라.”

“그럼 그거 오늘부터 입고 일하는 거야?”

“당연하지.”

“옜다, 돈.”

“고마워. 언니.”

지독한 옥희 언니였다. 그런데 곁에서 보면 여자애들에게 옷을 사는데 카드를 빌려주기도 하고 현금을 내줄 때도 있다. 너무 신기하게 보였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아마도 속내에는 치밀한 계산 속이 아닐까. 옥희 언니가 관리하는 고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일 것이다. 바로 당장은 손해를 좀 보겠지. 그렇지만 후일에는 더한 이익을 창출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 매력이 있게 보여야 한다고. 애들 틈에서 나오는 언니의 표정이 무척 흡족한 얼굴이다. 그러다가 복도 한쪽 끝에 찌그러져 있는 나를 보고는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뭐 한 거니. 재연이 반만 닮아봐라. 언니는 흘기는 눈으로 쏘아보면서 스쳐 갔다. 나와 간격을 두고 차츰 멀어지는 말이 공허해졌다. 딴 주머니 차거나 배신하고 다른 유흥주점으로 가면 끝까지 쫓아갈 거야.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경계하는 언니 눈이 확연히 띄었다. 차라리 도망을 칠까.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성병 걸린 소견서 써 달라고 해볼까. 이참에 에이즈 양성반응이라고 확 질러버려. 돈으로 다 되는 세상. 뭔들 안 되겠어.

한참 머릿속이 온통 복잡해질 무렵에 며칠 전에 왔던 그 남자가 또 왔다. 초저녁이라 가게 문도 제대로 안 열었는데. 영수 웨이터가 날 불렀다. 그 자식이야. 네 말대로 다 해 놓았어. 이번에는 돈을 얼마나 들고 왔는지 첫판부터 세게 나왔다. 밸런타인이다. 밸런타인 17년이면 여기서도 꽤 비싼 술로 쳐주는데.

보통 남자 여러 명하고 같이 오는데 혼자 왔다. 그렇게 그 짓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오빠. 오늘은 왜 혼자야?”

“윤서. 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 며칠 동안 너 보고 싶어서 손에 일이 안 잡히더라.”

“아이. 오빠는 참.”

그는 내 허리를 오른팔로 감아 안더니 바로 내 입술을 덮쳤다. 그의 현란한 손들은 내 온몸을 더듬고 바로 치마 속 안으로 쳐들어왔다. 그의 손짓에 멈칫했지만 되도록 부드럽게 쳐냈다. 자칫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대뜸 소리라도 지르면 큰일이니까.

“오빠. 잠깐만 술부터 좀 세팅하고 뭐가 그렇게 급해.”

keyword
이전 01화나는 술집여자였다. -엘살바도르 붉은 저녁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