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술.여 -1. 옥희배상 -1 -5

엘살바도르 붉은 저녁 개정판살바도르 붉은 저녁 개정판

by 이규만

‘백화’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덩어리 강남권의 노른자에 있는 초호화 룸살롱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잠깐 벗어나 내가 쉬는 곳은 가게 명성과 상반되는 강북의 작고 초라한 방이었다. 화려한 가게 안과 그 외에 술집 아가씨들이 머무는 공간이 이러하다는 것을 안다면 남자들이 이해나 할까. 정말 그렇다고? 에이 설마. 별로 상관은 없지만, 그들이 그걸 알았다면 한동안은 불쌍한 척 처량하게 바라다봐줄까. 그만큼 내가 기거하는 곳은 그곳과 영 딴판이었다.

여기가 네가 사는 곳이니? 너무 심했다. 옥희 언니는 딱 한 번 내가 머무는 방에 왔다가 몇 분 되지 않아 돌아갔다. 언니는 곧 나에게 크고 좋은 방을 하나 얻어 줄 것같이 말하다가 가게로 내가 출근하고 나서는 한 번도 방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도, 뒤에 찾으러 온 적도 없었다. 데리고 있던 수하에 남자애들한테 시켜 내가 기거하는 곳의 주소를 알려주고 감시했나. 웨이터들이 교대로 번갈아 가며 몇 번인가 내 뒤를 밟는 것을 봤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모른 척하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가 모르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더니 그것도 내가 낌새를 알아차린 것을 눈치챘나, 숨어서 미행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투였다. 한 놈은 아예 대 놓고 가게에서 나올 때부터 기다렸다가 내게 수작을 걸었다.

-오늘은 나랑 같이 잘래? 낮에 자면서 한 번 더 하는 것도 괜찮거든.

-영수 오빠한테 말해줄까. 네가 나랑 자자 한다고.

그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다. 굉장히 힘든 표정이었다. 뒷걸음치더니 가게로 들어갔다.

출근하자마자 언니를 찾았다.

-고리짝 시절에 인신매매도 아니고. 이게 뭐 한 짓이야.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자꾸 따지려 드니 급기야 언니 특유의 욕과 막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이년아. 내가 시켰다 어쩔래? 넌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니? 어디 앞뒤 없이 대드니? 나이 차이가 나도 한참 위인데. 아비어미도 없이 자란 후려 자식처럼 굴어? 부모 없이 자란 못 배운 것이 티가 난다니까.

부모 없이 자랐다. 그 부분에서 딱 멈춰 섰다. 언니. 언제 내 뒷조사까지 한 거야? 아차, 싶었는지 아-.라고 외마디 비명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건 아닌데. 언니는 이어서 말하지 않았다. 입을 닫고 얼굴을 돌렸다.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울컥했다. 가슴을 부여잡았다. 한참을 울었다. 예전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라 설움에 복받쳤다.

맞다. 옥희 언니 말대로 부모 없이 자란 거나 다름없었다.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지워 버리고만 싶었다. 고무지우개로 지우는 것같이 흔적 없이 싹.

엄마랑 남동생 -종찬이랑 같이 살던 집에서 나와 연락을 끊은 지도 벌써 아마 삼 년? 아니 사 년? 잘 모르겠다. 꽤 된 거 같다. 갑작스레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어렸을 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고 남동생 종찬이는 네 살 때였다. 그때는 집이 연탄보일러를 땔 때였다. 새벽이면 잠결에 엄마가 일어나서 연탄을 갈던 것도 기억난다. 백탄이 부엌문 앞에 있어. 엄마는 내가 밖에 나가려 할 때 소리를 질렀다. 애! 발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 부스스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라 제대로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고 있었다. 결국 백탄 파편은 시멘트 바닥에 퍽 퍼지고 나는 그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내 저럴 줄 알았어. 조심하라니까. 백탄이 잠옷 위로 온통 물들었다. 엄마는 바로 곁으로 다가와 날 일으켜 세웠다. 괜찮니. 옷 내줄 테니까 얼른 갈아입어라. 씻지도 않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단칸방이라 밖을 통한 문이 부엌으로 연결되어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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