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집여자였다. -1.옥희배상 -1 -6

엘살바도르 붉은 저녁 개정판

by 이규만

밤중에는 어김없이 엄마와 아빠는 다투는 소리 때문에 깨고 말았다. 전과 달리 아빠가 약간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엄마가 심하게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에도 아빠는 전에 없이 좋게 받아주고 웃어넘기는 거 같았다.

-당신이 놀고 이러고 앉아 있으니 내일모레 방세는 어쩔 거야. 방세도 당장 그렇지만 윤서가 학교 다니게 되면 돈 나갈 일투성이 일 텐데…….

-그래.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그래.

-못난 거는 말할 것도 없고. 지지리 궁상아.

-허허허. 그래, 그래.

아빠도 지쳤는지 술에 절어 혼미해지는 것인지 아무 말이 없었다. 말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방안이 온 두루 정적이 흘러가는 듯도 했다. 한밤중이라 더욱더 조용했다. 이제 끝났나 보다. 이내 긴장이 풀리니까 잠이 몰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고 부스럭거리면서 뭔가가 부산이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찬 바람이 휭 싸하게 불었다. 아빠가 부엌에 들어가서 그 좁은 방에 들고 들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연탄 불구덩이였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그 불구덩이를 아빠는 갑자기 이불과 함께 장판을 걷어내더니 그 위에 올려놓았다. 연탄에 꽂혀 있는 부지깽이를 꺼내 들었다. 부지깽이는 이미 불구덩이 화덕에 달구어져 시뻘겠다. 그 부지깽이를 엄마 눈앞에 아리면서 위협을 하였다.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 봐. 쌍년아! 아까 뭐랬니? 아휴 그냥 이걸 눈을 콱 조져 버릴까 보다.

엄마는 겁에 질려 있는 모습도 아니고 무덤덤하게 선고를 기다리는 체념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조금 전에 아빠한테 달려들어 막말하던 엄마가 아니었다. 묵묵히 아빠가 하던 욕지거리를 받아넘기는 중이었다. 그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서 빼낸 부지깽이는 대장장이가 방금 화덕에서 벌겋게 담근 쇳덩이보다, 작렬했다. 아빠는 정말 엄마 눈에 쑤실 것처럼 가까이 갖다 대고 휘둘렀다. 너무 무서웠다. 그냥 콱. 그냥 콱.

엄청난 공포가 온방 한가득 휘감았다. 동생 종찬이는 세상모르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지만, 나는 이불 아래로 고개만 삐쭉 내민 채 아빠가 엄마한테 짓밟는 짓을 똑똑히 지켜봤다. 내 몸 상태는 둘로 갈라져 아래위를 헤매었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돌고 아드레날린이 최고조로 반출되어 발은 차갑고 머리는 뜨거웠다. 세계사가 떠올랐다. 인도 신화에서 나오는 아수라 남작처럼 한쪽은 여자, 다른 한쪽은 남자같이 세로로 갈라섰다. 한 번은 굵직한 목소리로, 한 번은 얇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려고 다가섰다. 엄마 말하지 마. 가만히 있어야 해. 돌이 켜면 너무 생생하다. 엄마가 거기서 평소처럼 아빠한테 대들거나 말대꾸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거기서 정말 그 어떤 세상에도 일어나지 않을 참극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었다. 엄마가 아빠한테 대들지 않아 조용히 지나갔다. 엄마의 그때 감정 상태는 어땠을까. 엄마도 나처럼 무서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을 것 같다. 숨을 꾹 참고 연탄 불덩이가 아빠 손에 의하여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부지깽이조차 가늠 지어져 있던 아궁이 옆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온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있다, 아빠가 밖에서 비로소 담배를 하나 피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막힌 숨을 트며 골랐을 것 같다.

내가 그날 본 그 시뻘건 부지깽이의 쇳덩이는 수년의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정도로 너무도 강렬한 거였다. 그것은 상흔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내 몸에 어쩔 수 없이 덧씌운 수술의 자국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치유되지 않는 불치병으로 남았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집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엄마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저렇게 속 썩이는 남편이라면 오히려 없는 것이 낫다. 찾지도 않았고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연락하려 아빠 흔적을 찾는 낌새조차 볼 수 없었다. 바람이 난 건가. 아니면 어디 돈벌이로 나갔나. 엄마는 아빠가 없는 것이 편해 보였다.

그 뒤로 아빠 없이 엄마 밑에서만 컸다. 그리고 원래 남들처럼 있던 아빠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움이라는 것도 없었고 일체 엄마 앞에서 아빠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나도 그랬고 종찬이도 오랫동안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떠들지 않았다. 굳이 부각하게 시키려 그에 관련한 이야기 꼬리조차 늘어놓지 않았다. 종찬이도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누군가가 옆에서 아빠에 대해 말이 나오면 그 아린 기억이 되살아나서 몸이 저절로 떨릴 정도였다.

keyword
이전 05화나.술.여 -1. 옥희배상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