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림노래방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
수학 선생님은 그 빤한 이야기를 계속 주절댔고 좁은 문에 이르기를 퍽 강조해 댔다. 그런데 늦은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넓은 길로 들어선 상태였다. 단지 뒤로 물러서거나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당시 수학 선생님, 말에 대하여 방법적인 문제에 대해 골몰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시간과 때를 말해준 것 같았다. 시기적절한 순간을 놓치면 후회하리라.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 보았다. 몇몇 아이들이 수학 과목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졸고 있어 선생님이 꺼낸 이야기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시기를 놓치면 그 좁은 문도 열리지 않으리라.
결국 지혜는 내게 넓은 길을 일러주었다. 걸을수록 좁아지는 협곡에 이르러서야 나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고 수학 선생님, 말을 돌이킬 것이다.
지혜에게 내가 하던 일을 곧 그만두고 싶고 일을 알아보려 한다며 소개해 줄 곳이 있는가, 물었더니 정작 그녀는 자신의 남자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를 내게 해준 거였다.
-글쎄. 너 같이 생활력 강한 애라면 노래방 같은데 자리하나 얻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 나는 말이지. 네가 좀 고생하지, 않게 쉽게 돈을 벌 수 없는 길이 없을까 생각해 본 거고 네가 푼돈에 쫓아다니며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한 거야. 네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얼굴을 쳐다보면 너무 지쳐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어.
-…….
-그래도 전에 일이 견디기 더 힘들어졌나 봐. 전에는 펄쩍 뛰며 무슨 노래방이냐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자리까지 알아봐 줄 수 있나 물어보는 거 보면.
-그러면 나랑 같이 알아보고 너도 같이해보면 어때?
-뭐? 나도 하라고?
지혜는 무척 망설이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하기에는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인지 곧 그녀는 변명을 늘어놓을 찰나였다.
-나는 말이야. 남자 친구가 이야기하기에. 너한테 말해……, 웁.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네 남자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술 한잔 걸치면 매번 가는 거 아니니? 하여튼 남자들이란……. 어떻게 노래방 도우미 이야기를 너한테 그렇게 떳떳하게 할 수 있니? 하긴 그 부분에서 내가 만약 억눌렸던 걸 확 터뜨리듯 미주알고주알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가만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 나가줄래. 그동안 지혜와 나 사이에 근근하게 유지되었던 부스러기마저도 이런 일로 따지고 들면 기분이 상해서 소리쳤을 것이다. 이년아. 네가 뭔데 내 남자친구를 욕하니? 네가 한 번이라도 남자 얼굴이라도 봤니?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쉽게 말이 나와? 그렇지만 이미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그녀의 자취방에 얹혀 지내는 사실만으로 구속되어 있었다. 자칫 지혜에게 기분이 상한 말을 하게 되면 금방이라도 나가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말의 꼬투리를 늘어지기보다는 되도록 참아내고 인내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만큼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그녀는 악의 시초였다. 그렇게 탓하기에는 너무나 나의 환경이 어눌하다. 내가 쉬운 일을 찾아서 가는 것이라면 또한 그녀가 날 염려해서 권하는 일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 시초는 너무나 참기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혜림 노래방 앞에서 서성거리며 들어가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망설였다. 어쩌지.
가게 안에 들어가 노래를 부른다고 셈을 치르고 그곳 실내장식 분위기나 주인 동태라도 살피고 나올까. 아무래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주위를 맴돌다시피 하면서 계속 왔다 갔다 지나치기를 여러 번 했다. 마침, 그때였다. 멀찍이서 날 봤는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빨간 슈트 차림에 늘어뜨린 구슬 목걸이를 찰랑거리고 머리는 연한 갈색 물을 들인 모습이었다.
“자꾸 왜 우리 가게 앞에서 기웃거려?”
나는 대답 대신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뭘 그렇게 자꾸 쳐다봐? 그러고 있지 말고 이것 좀 도와.”
그녀는 건물 한 귀퉁이에 쓰레기통같이 놓인 커다란 나무상자의 자물쇠를 땄다. 축 늘어져 있는 거적을 그녀는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멍청하게 바라보는 날 보고 다시 다그쳤다. 뭐 해? 이것 좀 같이하자니까? 나는 멋도 모르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손에 이끌려서 거적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끄집어냈다. 에어바이블이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공기를 주입하는 호수를 잇고 펌프를 신나게 밟아댔다. 이내 커다란 기둥이 일어났다. 혜 –림 –노 –래 -방. 다섯 글자가 새겨진 공기튜브가 퉁퉁하게 서서 그 기개를 펼쳤다. 그녀는 빵빵해진 에어 바이블을 바라보고는 펌프를 떼어내어 상자가 있는 곳에 그것을 넣고 자물쇠로 잠갔다. 그리고 이내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머뭇거리기만 하다, 좌우 돌리는 그녀 머릿짓으로 건물 가게로 발걸음이 옮겨갔다. 들어가자꾸나.
“일하고 싶다고? 그래? 어디 한번 돌아봐.”
그녀 말대로 한 바퀴 돌아 보여주었다. 마치 오디션을 보러 온 학원 응시생같이 대하면서 그녀는 팔짱을 끼고 정말 심사위원이 된 거처럼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말투였다.
“음. 몸매도 괜찮고. 얼굴도 이만하면 됐고. 근데 말이야. 노래도 들어봐야 하는데. 노래는 여기서 조금씩 하면서 배워 가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맞출 줄은 알아야 하는데. 최신곡은 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