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윤서의 노래방 아르바이트의 시작.

by 이규만

“윤서야. 아직 멀었니?”

“응. 좀 더.”

“애. 좀 더 하다가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의 시초래. 나중에 또 누더라도 빨리 처리하고 나오는 게 좋대.”

“그래. 그래도. 좀….”

“요즈음 들어 더해진 거 같아. 적당히 하고 나와. 나 먼저 나간다.”

“알았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나가.”

문을 빠끔히 열어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빨간 블라우스에 제대로 된 짧은 청색 치마에다 검정 레깅스 타입의 스타킹을 신은 지혜는 오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어제저녁부터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까지도 내내 자랑질이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옷을 고르고 머리는 어떻게 하고 나가야 하는지 난리였다. 화장도 다른 날보다 신경을 쓰고 화려하게 덧칠했다. 미친년. 대체 남자친구가 얼마나 멋지기에 저렇게도 잘 보여야 한다는 건지. 내 참. 화려한 파티장에 가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보듯 그냥 만날 뿐인데 왜 저렇게 들떠 호들갑을 떨어대는 건지 원.

어제 하룻저녁에 아르바이트 자리들을 정리했다. 커피전문점 일은 이내 일할 이가 구해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매니저가 별 말없이 일급을 계산해 주었다. 그렇지만 바에서는 사장이 나를 붙잡고 질질 끌었다. 너 때문에 오는 손님이 몇 되는데 그분들이 많이 서운해할지 모르잖아. 정상참작이란 것도 있잖니. 말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돈을 올려주겠다. 그 말은 전혀 없었다.

-윤서. 너 때문에, 근래 가게 분위기가 꽤 좋았었는데 예전처럼 삭막해지겠구나. 어떤 일 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보수를 더 준다고 하니 내가 더 붙잡을 아니구나. 그래도 마음이 바뀌면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 어려워하지 말고 찾아오렴.

어이쿠! 어련하시겠어요? 편의점보다 몇백 원 더 쳐주는 시급을 두고 뭘 더 부려 먹으려고 그래? 거의 밤중에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인 바에서 그 정도 부려 먹었으면 되었지.

꾸르륵 슈-. 물 내려가는 소리가 시원했다. 그래도 이 자취방은 화장실은 깨끗해서 좋았다. 편하게 입던 바지춤을 들어 올렸다. 나도 어서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얼른 씻고 나가야지. 신림동에서 가까운 혜림 노래방을 기웃거릴 참이었다. 자리는 구해놓지도 않고 하던 일부터 때려치운 거였다.

지혜의 말이, 전적으로 받아들여진 거다.


오랫동안 신림동의 노래방이 있는 한 건물 앞에서 서성거렸다. 아직은 그 일을 한다고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혜림 노래방. -간판 이름이 맘에 들었다. 노래방 사장의 자식 중에 이름을 따서 붙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순정만화 주인공 이름을 따서 붙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곳에 끌렸던 거는 가게의 상호가 순전히 사람 이름 때문이었다.

일하려면 지인을 만나 소개로 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방면에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 이런 일을 한다고 대 놓고 말하기도 그랬다.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릴까 남사스럽다. 여러 시선을 받는 것조차 부담이지만 정말 친하지 않고서야 이런 일자리를 누가 물어본단 말인가. 인터넷에 나온 취업사이트도 그렇고 신문 따위를 보고 찾아가는 것도 좀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느낌을 잘 몰랐다. 이걸 친구 탓으로 돌리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간악하다. 엄마가 이 일을 알고 나에게 물어 온다면 뭐라고 해야 타당한 변명이 될까. 그리고 이 일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부도덕한 일이라 치부하여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것 같이 말함이 아니었다. 지혜 말대로 남자 옆에서 손뼉이나 쳐주고 아는 노래만 몇 곡 불러도 될 일이었다. 그렇게만 끝낸다면 세상 더없이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가끔가다 손도 잡아줘야 하고 블루스 타임 때는 남자랑 포옹한 채 방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남자와 몸으로 부딪치는 그 일이 문제이다. 어떤 일보다 싫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그럴 때마다 지혜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등을 밀었다.

그렇게 고생할 바에는 기왕이면 좀 더 나은 수익 창출을 찾아야지. 그래.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가 주장한 바에는 수긍하며 추슬렀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못나게 부정했다. 어느 일정 한 부분에 속해있으면서도 ‘나는 아니다.’ 끝없이 나를 부인하는 일이야말로 오렌지만의 과일이 아닐까. 어차피 다 같은 이야기 속에서 별다른 바 없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였다. 방법적인 문제에서만큼은 오렌지가 최고의 과일이었다.

재닛 윈터슨 소설책과 지드의 좁은 문을 지혜 책장과 경계로 꽂아 두었다. 일본 작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지혜는 전공 관련 서적이 대부분이었지만 내 쪽은 소설책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은 수학 시간에 교과서를 덮었다. 그리고 칠판에는 분필로 두 가지의 선을 그어 각기 다른 정 반대되는 길을 비교할 수 있게 보여주었다. 한길은 처음에는 넓었지만 갈수록 계속 좁아지는 것이었고, 또한 길은 처음에는 좁았지만 계속 갈수록 넓어지는 길이었다. 그 선 위에다 ‘지드’의‘좁은 문’이라고 썼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좁은 길로 들어서라. 좁은 길은 처음에는 들어서기가 힘들지만 갈수록 넓어지리라. 인생은 항상 두 가지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기 마련이다. 그 고비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스스로가 판단해야만 한다. 항상 고민할 것이고 어려울 것이다. 유혹은 항시 있을 것이고 쉬운 길은 얼마든지 많다. 넓은 길은 쉬운 길이다. 넓은 길을 선택해 걷다 보면 길은 계속 좁아질 것이다. 처음에는 달리는 데도 그리 부딪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가다 보면 마지막 단추는 이미 어긋나 제대로 채울 수가 없을 것이다. 정점에 다다를수록 후회는 계속 찾아올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하여 뒤돌아보고 생각을 해보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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