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집여자였다.
“요즈음은 두 개뿐인 못하고 있지. 방학 때 하나 더 하려고.”
“그나마 특정 종교단체나 대기업의 회장이 사회복지기금 면목으로 교육비로 기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 같은 애한테 좀 보태줘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없으니까 내가 매번 등록금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 아니냐고.”
미현이는 그저 엉큼한 계집애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소위 말하는 동아리 선배의 추문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어린애일 뿐이었다. 그 속성상 학교에서 시시때때로 행사나 대외활동을 이슈로 내세워도 분위기는 늘 취업이 우선이었다. 취업은 교육의 합리화나 과정을 쳐도 현재에 속한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였다. 토익시험을 봤을 때 몇 점이라도 더 악착같이 받아내고 그에 따른 자격증 하나라도 딸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차라리 그게 속 편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스펙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것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과 애들과 어울려 단체로 움직이고 거기에 맞는 행사를 하는 자체가 무리수로 보였다. 어디까지나 대학 생활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한고비이자 단계일 뿐이라는 것을.
머릴 깎고 여러 사람에게 보이자고 했던 시위가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행태 앞에서 먼 추태고 쇼맨십인가. 미현을 동정했다. 그래 네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졌는데. 달라진 것은 네 머리 꼬락서니밖에 없잖아. 그래도 ‘부질없었다.’ 하기에는 그녀에게 아련함이 묻어났다. 어차피 그녀도 내게는 말하고 싶었던 이유에서 일 거라 판단했다. 여자라서 머리가 그렇게 몹쓸 행태로 바뀐 것에 너무나 크나큰 상처라 말해주고 싶었던 거라고. 그래봤자 머리는 자랄 것이다. 남자 선배에게 품었던 연정 따위를 내게 한마디 던졌다면 웬만큼은 걱정 비슷하게 위로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윤서야. 나 선배 좋아해. 그래서 선배가 시키는 대로 머리를 깎은 건데. 그런데 내 맘을 안 알아주더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미현은 다른 별말이 없었다.
미현이 바에서 나가자마자 내 문제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학기 중이라 몸이 더 피곤했다. 단 두 군데 일하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한 군데라도 빠지면 곧 이어질 다른 일도 나가기 싫어졌다. 하루라도 쉬었으면 하는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지혜 말대로 눈 한번 딱 감고 노래방 도우미로 뛸까. 몇 번 고심했었다. 거기 가면 조금만 일하고도 편의점보다 커피전문점 서빙보다 세 배, 네 배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짧았다.
그렇지만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도저히 내키질 않았다.
-애. 넌 무슨 청승이니? 노래방 도우미라고 해서 네가 생각하는 거처럼 꼭 남자 손님들하고 술 먹고 몸으로 부대끼는 일들이 계속 있는 건 아니야. 장단 맞추다 시간 보내고 그냥 나오는 경우도 허다해.
일을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오면 지혜는 떠들었다. 노래방 일 괜찮다니까. 노래방. 노래방. 그녀는 꼭 자신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해 본 것처럼 말했다. 하긴 내가 장시간 일을 쫓아다녀 초주검이 될 정도로 헬렐레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이 안타까워하는 말임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그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생각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못 할 짓이야.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딱히 시간도 없잖아. 지혜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모든 걸 다 수용할 수 없었다.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비관적인 한 무리에 나도 속해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일을 하게 되면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고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게 단정 지었다. 대충은 그러할 것이고 이대로 되는대로 안이하게 몸을 내맡기지 않기를. 수백 번 수천 번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나를 가볍게 부정하고 추스르기에 현실은 너무 냉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설령, 지혜가 아니었더라도 미현이라도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누구든 유혹은 다 당하기 마련이다. 그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노래방 도우미로 널 만나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면서 얼굴은 붉히지 말아야지. 학교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을 적에 미현도 지혜처럼 별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혜에게 했던 것과 같이 반박하지 않았다. 같이 동조하는 견해에 섰다. 말처럼 쉬웠다. 가벼웠다. 오히려 미현의 말에 이르러서는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용기가 북돋아졌다. 재차 확인까지 하는 일같이 받아들여졌다. 힘든 건 결국 마찬가지고 몸으로 치어 바르는 일이 다 그렇겠지. 다를 게 뭐람.
-같은 여자끼리 노래방에서 만날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야. 혹시라도 그러한 일이 생길지 몰라.
미현이 별개의 한마디를 더했다.
-지난번에 카페에서 나랑 같이 한 번 봤었지? 좀 말랐지만, 키가 호리호리하게 큰 친구 말이야. 내 남자친구가 거기 오면 나한테는 꼭 알려줘야 해. 남자의 스킨십이 어땠는지를.
미친년. 그걸 우스갯소리로 할 말이야. 나는 할까 말까, 갈림길에 서서 심각한데. 네 머리를 밀어버린 선배는 어쩌고? 남자친구를 뭐 엿가락 바꾸듯이 금방 바꾸는 거니.
*
텅. 텅. 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막을 깼다. 윤서야. 문 좀 열어봐. 조금 문 열린 틈 사이로 창끝에 새어 나오는 엷은 빛이 파란빛을 돋우었다.
무심결에 문을 열어 보니 영수 오빠였다.
“어?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 네가 걱정돼서.”
“아니. 내 말은 집을 어떻게 알고…….”
“누나한테 물어봐서 알았지. 근데 넌 내가 왔는데 들어와 보란 말도 안 하냐?”
“아. 그래. 미안. 너무 누추해서. 괜찮겠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리고 이거나 받아. 장 좀 봐왔어.”
오빠가 두 손에 잔뜩 커다란 비닐봉지를 맡겨서 하마터면 문턱에 걸려 뒤로 자빠질 뻔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잡지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담뱃재 가루. 몇 갑째 피우고 한 번도 비우지 않은 재떨이. 영수 오빠는 방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오빠에게 보여줄 방이 아니었다. 한번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내 참. 너무 창피했다. 문턱에서 망설이고 있는 오빠한테 들어오란 말도 못 한 것이다. 오빠는 갑자기 셔츠를 걷어붙이더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잡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물어왔다. 빗자루 하고 쓰레받기 없어? 청소도구 말이야. 빗자루? 그런 건 없어.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웬 청소 질이냐고.
오빠는 이불을 걷어내고 잘 정돈한 뒤에 한쪽에 두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걸레를 빨아 와서는 방을 훔쳤다. 그리고 콧노래를 불러댔다. 웅크리고 앉아서 시선을 그에게서 떼지 않았다.
“오빠. 뭐가 그렇게 신났어? 무슨 노래야?”
“이적의 달팽이.”
“달팽이? 그런 노래도 있어?”
“나온 지 꽤 오래된 노래인데 한 번 듣고 나니까 너무 좋아서.”
영수 오빠가 너무 귀여웠다. 매번 어두침침한 홀 안에서만 보던 얼굴이었다가 이렇게 방 안에서 보니까 꽤 밝아 보여서 좋았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이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다 그가 -먼 훗날에- 큰소리로 질러대는 노래 대목에서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 귀여워. 영수 오빠 너무 귀여워.
그는 내 입술을 덮쳤다. 이내 훔쳐 갔다. 그렇게 쓰다듬고 감미롭게 감질나게 오빠가 느껴졌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매 만졌다. 그러고 있자니 나도 그게 좋아서 그가 하는 대로 맡겼다. 그도 나를 느꼈는지 등을 쓰다듬다가 겉으로 가슴을 만지려 들었다.
“씨발….”
그가 놀랐는지 입술을 떼었다. 곧 그를 밀쳐냈다. 그래도 그는 막무가내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이 새끼야.”
“왜 그래? 갑자기? 너도 지금 좋은 거잖아.”
“꺼져. 재수 없어. 돌아가. 이제 다 필요 없어. 다시는 오지 마.”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 내가 뭘 잘못한 거니?”
“오빠도 다른 남자 새끼들이랑 똑같아. 나 따먹으려고 온 거야?”
“윤서야! 말 좀 가려서 해.”
“왜? 나 이런 거 몰랐어? 얼마나 고상하게 잘 자란 어느 댁 도련님이셔? 말도 곱게 하시고? 그래서 그렇게 수준 높은 양반께서 그 손으로 나를 더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아니 좀 전에 너도 좋아서…. 날…….”
“됐다니까. 내 입에서 더 험한 욕 듣기 싫으면 이제 갔으면 좋겠어.”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날 바라봤다. 이불을 펴고 그가 안 보이게 뒤로 돌아누웠다. 베갯잇 사이로 자꾸 눈물이 흘러내려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영수 오빠가 싫은 건 아니었다. 그냥 키스만 했다면 받아줄 수 있었다. 내가 아파서 그만둔 걸 알면서 범하려 들다니. 그렇게 더듬다 보면 중간에 멈출 수 없다. 본능이란 건 때로 의지와는 다르다. 충실히 몰두하게 만들어서 탈이지만. -더 이상 나아가게 되면 그는 분명 나를 가지려 들 것이다. 고통스럽게 망가진 몸을 이제 그에게까지 보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잊은 듯이 잠든 거 같았는데 그가 밥을 했는지 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 비슷한 냄새까지 났다. 갑자기 허기가 져 왔다. 그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는데도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뒤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서야. 안 그럴게. 화 풀어. 빨래도 다 빨아서 널어놨어.”
“…….”
“네가 아픈 걸 갑자기 잊어버렸나 봐. 정말 미안해. 어서 밥 한술 뜨고 기운 차려. 담배는 조금만 피우고. 나 그만 갈게. 다음에 볼 때는 화 안 낼 거지?”
그가 신발을 신고 문을 나가는 소리가 났다. 곧 일어나서 밥상을 보았다. 고등어구이에다 김에다 두부가 둥둥 떠 있는 된장찌개. 계란말이. 미역국. 많이도 했다. 정갈한 그의 요리 솜씨가 느껴졌다. 엄마 생각이 났다. 지금 엄마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먹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허겁지겁 먹어댔다.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