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9

이야기속 이야기 -레이디퍼스트 4

by 이규만

그녀의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일그러지더니 눈까지 흘겼다. 웨이터가 옆에서 들을세라 앞가림이 철저했다. 얌전한 자신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염려한 것인가. 레이디퍼스트에서는 남자와 술 마시는 거는 네가 처음이야. 영광인 줄 알아. 지금 나한테 끼 부리는 거니. 이런 곳에 날 데리고 온 이유가 뭔데.

“그리고 뭐 하러 돈 아깝게 모텔비를 날려? 우리 집에 가면 되지. 아무도 없이 혼자 사는데. 그 돈 가지고 편의점 가서 입가심으로 맥주 사 가자. 응?”

그렇게 듣고 보니 나더러 비용은 다 내라는 거구만. 거기서 내가 물고 늘어지면 남자가 쩨쩨하게 구는 것 같아 관두었다. 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어련히 알아서 좋은 메뉴로 시켰을까. 기왕 이렇게 온 것, 여기서 몸을 부대끼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싶은데 레이는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참은 것이 얼마나 준수하게 예의를 지켜준 거냐고.

“레이. 나 너랑 키스하고 싶은데…….”

“아이. 오빠. 조금만 참아. 웨이터, 조금 있으면 들이닥친단 말이야. 우리 집에 가서 맥주 먹으면서……, 알았지?”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꼭 서울의 수도방위사령부처럼 철통방어가 따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리 정말 예약해 둔 것처럼 주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바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웨이터 두 명이 분주하게 술과 과일 안주와 마른안주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술은 양주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임페리얼이나 섬싱스페셜, 윈저, 조금 더 비싸봤자 밸런타인 마스터 그런 종류였다. 꼭 누가 먹다 남은 술을 총집합해서 가져온 싸구려 양주의 기본이었다. 옆에 수입 맥주라고 내놓은 것이 병은 에딩거 에페 바이스에, 캔은 칼스버그가 고작이었다. 과일 안주는 종이 부스럼과 파인애플 잎사귀를 주축으로 하여 방울토마토와 수박, 바나나 키위를 솎아 배 모양을 본떴다. 마른안주는 단연코 오징어와 땅콩이었다. 피스타치오나 아몬드는 없나요?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싸구려 술에 그런 고급 안주가 들어올 리가 없지. 어울리기나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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