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2

H사립대를 다니는 윤서의 노래방 아르바이트 잔혹사.

by 이규만

그런데 그렇게 망친 성적표를 들고 엄마를 찾아가자니 엄두가 안 났다. 성적표를 학교에서 집으로까지 부치는 경우가 있다던데. 여차하면 엄마 손에 학기 말 성적표가 들어갈 조짐이 농후하였다. 학교에 알아보니 서무계에서 일하는 조교인지 아줌마인지 그렇게 물어보는 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뭐 고등학생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물어봐요. 다 알아서 하는 거지. 우리 학교는 성적표까지 집에다 부치는 일이 없으니까 염려 마세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학생들 집마다 언제 그걸 다 발송합니까. 나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자못 심각했다. 오죽했으면 학교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그렇게 확인까지 했겠냐고.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계속 가자면 언젠가는 엄마가 성적표를 가지고 말을 할 것이 틀림없었다. 성적표는 학기 때마다 분기 때마다 엄마를 웃게 만드는 전주곡이자 희망이었다. 말하자면 성적표는 엄마와 내가 세상으로부터 꺾이지 않고 어떻게든 쌓아 올린 전리품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보여줄 수 없을 때도 있다니. 내가 이렇게까지 추락하다니. 안 그래도 등록금 때문에 종찬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든데. 거기다 성적까지 형편없는 나락으로 가라앉다니.

다른 건 몰라도 전공과목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수학이라도 잘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하여 매력을 느꼈고 여자 수학 선생님께 존경심은 그야말로 대단했었다. 그리고 또한 대학 전공을 별 고민 없이 수학과로 결정할 정도로 영향력은 컸다. 내가 전공으로 선택할 정도로 반영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선생님의 유려함 때문이었다. 특히 수학 과목을 재밌게 가르치는 것과 인생의 매개변수에 대하여 다변적이었다. 매번 수업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 시간과 문학적 양서의 심도는 굉장히 깊었다.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가 등장하고 때로 ‘오헨리’의 단편‘이십 년 후’가 나왔다. 잠깐이기는 해도 수학 과목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학 수업이라고 착각하게 할 정도였다. 한때는 그 사고를 닮고 싶어서 많은 책을 읽으려고 욕심까지 부렸다. 지금도 복수전공으로 문학에 관련된 것을 선택하고 있지만 언제 마음이 변죽같이 들끓어 바뀔지 모를 일이다.

시간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주가 뒤바뀔 적이 많았다. 공부하러 다니는 건지,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는 건지 가끔 헷갈렸다.

이번 학기는 어떻게든 모자라는 학점을 메워야 하건만 강의를 여러 개 빼먹었다. 일을 그렇게 피곤하게 쫓아다니다 보니 매번 늦게 일어나기 일쑤였다. 시간표도 제대로 맞추기 어려워 수업내용을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수업내용이 무엇인지도 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건성건성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 부업이 노래방 일로 한 가지로 정리가 되었으니 시간은 많이 남아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보내고 저녁때 일을 하면 어느 정도 시험공부는 넘길 수 있지 않나, 나름대로 계산하고 있는 터였다. 며칠 지나고 나면 적응이 되겠지. 계속 이대로 가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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