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으로 병을 이겨내는 윤서와 같은 일을 하는 재연의 방문
처음부터 이렇게 내 아래에 염증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어느 때에 누가 그랬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소음순 부분과 음핵에 이르는 곳을 만지작거리다가 손톱 부분으로 긁혔는데 당시에는 만지면 조금 따갑고 으레 그러려니 했다. 미처 거기서부터 염증이 생길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걸 그대로 방치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때 남자들이 늘 그렇게 하는 건가 싶었다. 계속 따갑고 아팠으면 옥희 언니나 주위에 같이 일하는 여자들한테라도 물어봤어야 했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창피한 것도 있었고 늘 그러한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줄만 알았다. 그렇게 있다 보면 저절로 낫게 될 줄만 알았다. 이 정도로까지 망가질지는 몰랐다. 늘 까발려서 말하면 소위 말하는 밝히는 여자로 보일까 봐 그게 두려운 것도 한몫했었다. 그런데 계속 하혈로 이어지자 나는 생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영수 오빠를 통해서였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통해 알게 되어 그것이 더 창피해 이내 숨기려고만 들었었다. 아니 너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려. 좀 보자, 보자니까. 아무리 남자들과 그 짓을 먹고사는 처지를 다 안다, 해도 그렇게 앞에 놓고 다리 아래를 보여주는 것은 좀 그랬었다. 윤서야 병원 가야 해. 이거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니까. 그가 혹여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두려워서 그의 손목을 붙들고 고개를 옆으로 몇 번 흔들었다. 그리고 고통을 추스르며 눈물을 흘렸었다. 오빠. 제발. 다른 사람한테는 알리지 마. 제발 부탁이야.
몸이 좀 나아졌나 느낌이 왔을 때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미더운 마음만이 모질게 만들었다. 아프니까 만사가 귀찮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일이 얄팍하게 조금씩 흔적처럼 스쳐 지나갔다.
학교를 나가면 어떨까. 그동안 모은 돈도 있으니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알아보지는 않았는데 휴학계도 시효 말미가 있지 않을까. 오래되면 재적 처리되고 학교 서무과에 개인신상서류조차 내 이름 석 자를 대변할 것들이 제대로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김 윤서 1학년 H대학교 중퇴.
전에는 학교 잘 다니고 있는 미현이를 다짜고짜 신림동에 한적한 카페로 불러내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물어보면서 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거라고 공헌하기조차 했었다. 나도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보통 대학생! 그러면 미현이 덩달아 호응해 주었다. 그럼 지금은 아닌 거야? 넌 그냥 휴학계만 내었을 뿐이라니까.
지금쯤이면 미현이도 졸업하고 선생질하고 있거나 학원 강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는 선배나 연줄을 통해 대기업에 취직했든.
창밖은 여전히 고요했다. 이따금 뒤로 약간 젖혀진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이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영수 오빠가 다녀간 지도 꽤 지났다. 여전히 나는 지금도 문을 닫아 두지 않았다. 누군가 돌아보고 가져갈 물건도 없었다. 문고리가 고장이 나서 한참이 된 연후라 너덜너덜 덜렁거렸다. 집주인한테 고쳐 달라고 말을 해볼까. 밖에서 누가 오는 구둣발 소리인지 문을 여닫는 소리인지 인기척이 났다. 영수 오빠인가. 나는 잠이 막 들려고 하려던 참이었다.
“언니. 있어? 윤서 언니! 나야. 나라고.”
나가 누군데? 우당탕 한바탕 구르는 소리가 문밖에서 요란하게 들렸다. 벽시계를 보니까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잠이 확 깨고 말았다. 항상 밤에 술을 마시고 백화에서 남자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시각이 매번 그랬다. 그렇게 오래 생활하다 보니 몸이 시계가 됐다. 그런데 옥희 언니는 왜 가게 이름을 ‘백화’라고 지었을까.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룸에서 얼굴을 볼 때마다 그걸 물어볼 새가 없었다.
재연이었다. 고주망태로 취해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가 심한 거 보니 폭탄주 섞어서 마셨나 보다. 방문턱에서 비틀거리면서도 아슬아슬하게 하이힐을 겨우 벗어던지고 나한테 달려들었다.
“언니. 윤서 언니. 우리 언니. 많이 아프다며? 불쌍한…….”
“미친년. 또 얼마나 퍼마신 거니? 적당히 마시지. 이년아. 몸 관리 잘해. 너도 나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관리 잘하란 말이야.”
재연이는 내 품에 달려들더니 끽끽 울어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누가 헤아려주겠니. 실컷 울어. 술 깨고 나면 언제 그랬나. 다시 물어볼 너지만.
언니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내가 그때는 금발로 염색할 때였거든. 그때도 룸에서 술이란 술은 다 먹고 내가 호텔에서 이차로 놀고 남자랑 헤어지고 나오던 길이었거든. 술로 떡이 되어서 늙은 남자랑 그 짓도 잘했는지 기억도 안 나더라고. 택시를 콜 했지. 새벽이라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 바로 차가 오더라고. 차 문을 붙들고 겨우 버티고 섰는데 차 문이 나한테 달려오는 건지 길바닥이 나한테 달려오는 건지 감이 안 잡히더라고. 막 넘어지고 그랬나 봐. 도와주려고 남자애가 뛰어왔어. 정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중간에 택시 기사가 내 욕을 한 것 같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택시를 타고 오긴 왔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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