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달걀껍데기. -6

유리문 –재연이 말한 남자 입장. -3(액자소설)

by 이규만

이미 자신 잣대로 나를 재고 맞추려 들었다. 나는 그게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가 술집 다니면서 얼마나 수입이 되는지 몰랐다. 그녀가 사귀자고 한 이후에 나를 백화점 같은 곳에 데리고 다니며 옷도 사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심지어는 내가 대학교 다니는 신분을 잘 이해나 하는 것같이 노트북까지 사주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계속 무르려 했다. 됐다니까. 내가 그래도 자길 좋아하잖아. 받아줘. 재빠르게 어느새 카드를 꺼내 사인을 했는지 거기 직원이 명세서를 갖다주었다. 그래도 이거는 아니잖아. 이렇게 비싼 노트북을. 카드 긁고 서명까지 한 상태라고. 이대로 물러? 기왕 사준 거,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더 버티면 그녀가 창피해할까 봐서 노트북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술집 여자’라는 말이 그녀 입에서 튀어나올까 두려웠다. 선입견을 품고 그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솔직히 전혀 아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그녀가 나에게 잘 보이려고 최대한 애쓰는 것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거기라 앞에 대 놓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마음 한구석에 어설픈 어폐가 자리 잡고 나를 흔들었다.


학교를 다녀오고 나면 늘 그녀가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밥도 해놓고 냉장고에는 밑반찬도 몇 가지 해놓은 것들이 보였다. 빨래도 잘 정리가 되어있고 청소까지 해 놓았는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녀에게 말을 할 참이었다. 그동안의 호의는 고마워. 인제 그만할까 해.

아무래도 그동안 그녀가 사준 옷이랑 노트북 등을 잘 포장해서 따로 놔둔 상태였다. 물론 그녀가 그걸 청소하다 발견할까 봐 안 보이는 곳에 숨겨 두었었다. 나는 계속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다녀오고 원룸에 들어왔을 때였다. 그녀가 또 왔었나. 깨끗하게 정리된 방안이 그렇게 느껴졌다. 해거름이 지고 이제 막 어둠이 원룸의 창밖으로 스며들 저녁이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멈칫 놀랐다. 화장은 얇게 했는지 립스틱만 빨갛게 튀어 보였고 옷은 하얀 셔츠차림에 검정 치마였다. 평소에 화려한 그녀 대미지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혹시 그녀에게 받은 것들을 돌려주려 일부러 싸둔 것을 청소하다 발견한 것은 아닌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좁은 원룸에 물건을 숨겨 두어 봤자 곧바로 보일 것이다. 왜 한 곳에 몰아두고 쓰지 않고 있는 거야. 그녀가 물을까 싶어 변명거리를 생각 중이었다. 아끼려고 그런 거지. 아까워서. 설마 돌려주려고 한 곳에 둔 것이라 묻지 않겠지. 그렇지만 머뭇거리기라도 한다면 그 낌새를 눈치채지 않을까.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것 잘 됐다. 어차피 부담이었어. 돌려주려 했던 거야. 가져가. 내 방에는 오지 않았으면 해. 복잡하게 얽힌 마음이 오갔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겠다. 그녀에게만큼은. 구구한 변명으로 나를 치장하려 들었다. 이래저래 갈팡질팡할 무렵이었다. 그녀가 가만히 나만 자꾸 쳐다보니까 조급증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어? 오늘 일 안 나갔어?”

“응. 나 오늘 자기한테 할 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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