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시방에서 생긴 일 -4

어떻게 세상사는 일을 몰라도 그렇게 모르니?

by 이규만

아니면 내가 일백오십만 원이라는 액수를 갈겨쓴 것만 보여 주고 그 사람이 동의하면 끝이 나는 건지. 그 종이쪽지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저 나중에라도 경찰서의 그 사람들이 내게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오면 보여 주는 용도로 쓰이는 것인 줄만 알았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곧 그가 나섰다. 어떻게 쓰냐면 말이지.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인생 경험을 두루 섭렵했거나 대처하는 판단이 나았다기보다 ‘여러 번 이러한 일을 겪었다.’ -뉘앙스가 풍겨 나왔다. 말하자면 병원에 온 이후로 그를 의심쩍게 만드는 미약한 행동들이 그대로 나를 속이기 위한 연기임에 확신하게 했다. 그를 바라본 정황들이 의구심조차 필요 없게 했다.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과도 종종 의도적으로 부딪치고 합의 보고 목돈을 챙기는 ‘꾼’에 낙인을 찍었다. 나는 그에게 낚인 것이다. 된통.

처음 했던 일은 중간에 후회를 불러들였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매번 연습하고 대처한다면 순간순간 후회로 가득해진 하루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하루보다도 긴 하루에다 어떠한 시간보다 너절하게 점철되는 시간을 맞이했다.

그는 내가 어디를 사는지 형편이 어떤가를 물어보는 듯도 했다. 그게 합의금을 더 불릴 생각으로 나를 떠보는 건 아니겠지.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나긋해져 있었다. 순순히 다 대답해 주었다. 성남에 쭉 살다, 형편이 좀 나아져 경기도 광주시 아파트로 이사 갑니다. 설마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합의랑 이사랑 뭔 상관이겠어. 나도 그의 연락처를 얻어야 하잖아.

나도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상대방의 개인 신상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휴대전화도 없고 집 전화도 없다. 그 말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 연락처라며 고모부 걸로 알려주었다. 상대방의 연락처가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 물어본 거였는데. 가족이 없는 건가. 결혼도 안 했고? 내가 그나마 그에게 의구심의 꼬리로 그를 확인하는 마지막 절차였다.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는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다.

다음날 김 부장에게 합의서를 보여 주자, 나를 또 바보 취급했다. 몰라도 어쩜 저렇게 모를까. 대 놓고 비웃었다. 여지 너와 같이 일한 시간이 창피하다.

“상대방 도장이나 주민등록번호 그러한 사항이 없잖아. 이게 종이쪽지에 불과하지, 무슨 소용이야. 그 사람한테 가서 도장을 받아 와. 인감으로. 아니면 주민등록증 그 사람 것으로 복사를 해 오던가. 그 사람 신분증도 없어? 그리고 합의금 액수도 백 오십씩이나 불렀어? 병원비는 뭐 그 사람이 낸다니? 네가 피의자야. 제발 제대로 좀 인식하라고. 그 말대로 중간에 검사까지 한다고 장비까지 들이대면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 줄 알고 그렇게 턱없이 높게 불렀어. 합의금은 합의금대로 축나고 병원비도 따로 네가 내고. 뭐 하는 거냐? 그 자식 상대를 잘 골랐네. 먹잇감을 제대로 물었어.”

내가 한심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병원으로 뛰어갔다. 호 지문이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합의금을 줄여 보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신상에 관한 부분을 합의서에 기입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어제와는 달리 영 딴판이었다. 몸이 여기저기 쑤셔 와. 엠아르아이 촬영을 꼭 해봐야겠어. 어제랑 몸이 또 달라. 의사가 그랬는지 원무과에서 그랬는지 옆에서 부추긴 것이 틀림없었다. 시간을 더 끌어.

그가 하도 주저주저하기에 화가 났다. 속에서 또 다른 나인‘욱’이 올라왔다. 합의서를 그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씩씩거리며 그대로 병원을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피시방을 갔다. 그나마 의지하고 조언을 해주길 바랐는데 김 부장이 딴청을 피웠다. 김 부장은 모른 척이었다. 이 사람아 이제 야간에 자네가 없어서 내가 밤새워야 해. 그 사람은 단지 중간자이었다. 멀거니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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