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크림 박스 -3

정식일은 제쳐두고 애숙이 일을 도우러 갔었지. 승동의 오지랖.

by 이규만

애숙이 이내 쪼르르 달려가 생크림 최 반장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데커레이션 반 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내가 빠져도 될 것 같았다. 재료를 두 번 타러 가는 시점에서 자재과에 가서 7호 상자는 가능한 한 그날 안 가져와도 될 만큼 끌고 간 조그만 수레에 실었다. 그런 내 앞에 애숙이 나타났다.

“이렇게 가지고 올 거면서 버티고 있었어? 그리고 자재과에 가면 간다고 얘기나 하고 갔으면 내가 이렇게 안 와도 되잖아.”

투덜거리듯 말하고 획 돌아가는 모습이 내 속을 긁어놓았다. 그 도도함이란 보통내기 남자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이기심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불러서 화를 내려다 전에 진숙이나 길량이 누나한테 화를 낸 생각이 나서 꾹 참았다. 또 그러면 안 되지. 잘 넘겨야 해. 여러 차례 마음속에 되새겼다. 화를 내면 또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래도 끓어오르는 화는 주체가 안 됐다. 내가 화가 난 점은 일을 돕기 위해 애써 준 것을 그녀가 고맙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의당 해주어야 할 것을 해주었을 뿐이라는 말투가 싫었다. 맨 처음 애숙을 길량 누나와 함께 닭갈비 집에서 대할 때 느꼈던 좋은 여자의 이미지는 상실되고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외모만 반듯한 여자들이 보여 주는 일상으로 점철되어 남성의 보호본능이나 일으키려는 나긋함으로 보였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게 아니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기왕 내려온 것 한 묶음이라도 들고 가지. 그냥 갈 게 뭐람. 노란 노끈으로 묶어져 있는 묶음 상자가 수레에서 처량하게 날 쳐다봤다. 애숙이가 너를 외면하고 간 거니. 후. 너나 나나. 참. 수레를 끌었다. 백까지 세어야지. 하나. 둘. 셋. 넷….

현장에 올라와 전혀 아무 일이 없던 것같이 굴었다. 7호 상자를 원래 있었던 자리에 묶은 채로 놓았다. 일부러라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 한 묶음은 풀어 애숙한테 약간은 어색해도 웃으며 넘겨주었다. 서비스. 서비스. 네 말대로 어차피 내일이니까.

겉 포장인 누런 종이도 다 정리해서 버릴 무렵이었다. 이내 애숙은 케이크를 재빠르게 포장한 뒤였다. 그녀는 남는 끈과 에페를 다 포장하고 남아 있는 7호 상자까지 내게 떠넘겼다. 어차피 데커레이션 케이크 반이 더 많이 쓰는 물건이잖아. 양과 반 바인더 밑은 따로 놔둘 곳도 마땅치 않다니까. 그러면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에 놓을 일이지 내게 맡기는 것은 또 뭔가. 어이가 없었다. 잠시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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