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래도 토스트 -4

‘전태일’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얘기를 하고 싶었다. 동료에게

by 이규만

공장 밖을 나갈 수가 없어 나의 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하였다. 스물네 살의 내 젊음의 한 귀퉁이가 케이크와 맞물려 저물어 간다는 것이 한심했다.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즐기고 싶었다. 시내라도 나가 여기저기 쏘다니고 인파에 휩쓸려 캐럴을 실컷 들었으면 좋으련만. 작업장은 온통 크림이나 카스텔라투성이었다.

종일 일하다 보면 내 몸에 단내가 백여 크림 냄새가 옷깃으로라도 스쳐 맡게 되면 일단은 거부감부터 왔다. 버터크림 냄새가 느글느글했다. 느끼함이 더해 속에서 토사물이 올라올 거 같이 뱃속부터 요동쳤다.

작업장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아예 한 가지 일만 하도록 정해졌다. 큰 믹서 앞에서 버터를 적당한 크림 농도에 오르게 하여 내는 게 내게 주어진 주된 임무여서 주로 그 앞에서 움직였다. 나중에는 크림 공급하는 일이 양이 현저하게 엄청나게 늘어나자 이 반장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내게 각종 큰 그릇을 동원하여 믹서에서 돌린 버터크림을 담아두게 하였다. 혹은 이 반장 자신도 나를 도와 팔을 걷어붙이고 크림 공급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자 전 계장이 공무과에 부탁해서 만든 것인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사 온 것인지 몰라도 큰 욕조같이 생긴 기다란 철재로 만든 바퀴가 달린 통을 큰 철제 삽과 함께 세트로 가져왔다. 그 통을 보자 거기 들어가서 눕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피곤이 몰려들었다.

“뭐 하니? 얼른 기계 돌려!”

“네!”

전 계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일은 훨씬 수월해졌지만 내가 더 여유가 없어졌다. 돌덩이같이 얼어붙은 버터 포장지를 벗기고 잘게 잘라내어 믹서에 넣었다. 큰 통을 보자마자 언제 저 크림 통을 가득 채울까 했는데 계속 매달리다 보니 곧 그 큰 통은 하얀 크림으로 가득 찼다. 흰색이지만 아이 보리빛깔이 흐르면 딱 적당한 상태였다. 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 그 상태가 딱 좋았다. 그런데 뭐든 차고 넘치면 무리가 따르는 거였다. 그 믹서와 하얀 크림, 또한 흰 유니폼을 입은 나 자신과 난잡하게 튀어버린 크림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공장 창밖은 까맣고 벌써 어둑해진 지가 한참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옆에서 아무도 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생은 다 내보냈다. 이제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지만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에 양력설 연휴 이틀을 쉬기 위해 비축생산에 들어갔다. 유통기한을 미리 앞당겨 날짜를 찍어 그날 생산한 것은 냉장고에 들어가고 재고 케이크는 그날 출하 분으로 나갔다. 엄격히 말하면 불법이었고 소비자가 알면 난리를 칠이었다. 신선한 케이크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 지난 상품을 먹는 셈이었다.

차라리 비축을 안 하고 안 쉬고 말지 도대체 이게 사는 것이냐. 그 행사를 치를 때 휴무도 못하고 모두 지칠 대로 지쳤다. 열네 시간, 열다섯 시간의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한 번도 소리 내서 불만을 털어놓거나 이야기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새해를 이틀 앞둔 날 갑자기 P 크루아상이 창업한 이래로 최대치의 주문량이 들어왔다. 생산할 수 있는 물량만 하고 미출고 내야 했었다. 전녹중 계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합시다. 조금만 참읍시다. 사원들을 독려하기에 바빴다. 그날 출근을 해서 밤을 새우고 아침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장작 서른여섯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생산부 과장이 수고했다며 자장면 한 그릇씩을 사주었다. 자장면을 먹으면서 졸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자장면 한 그릇과 서른여섯 시간의 노동력을 맞바꿨다. 너무 바보였다. 그리고 나약했다. 너무 모르고 이용만 당했다. 내가 만약 그때 노동조합 대의원이었더라면 하지 않는다, 했을 것이다. 전에 김종필 기사가 말한 그 노동조합에서 소리치고 싶었다. 아무리 어용일지라도. 요주의자 명단으로 찍혀 회사로부터 내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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