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시절 정이와 룸사롱 아가씨의 빚, 백화가 대충 돌아가는 형세
머리를 들고 바라본 오월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맑았다.
침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전환이 되는 것 같았다. 알게 모르게 때로는 기분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며칠 전이다. 실장의 친구가 회사에 다녀갔던 것은. 출입구에 들어서는 그 남자의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 남자도 나를 의식한 건지 둘이 눈길이 부딪쳤다. 누구더라? 일 초, 이 초. 나는 그가 누군지 이내 알아봤다. 그 남자는 알릴 듯 말 듯 야유를 보이며 득의양양하게 저쪽 실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덕분에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정말로 묻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찐한 립스틱을 바르고 검은 스타킹에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걸쳤다. 남들하고 다르게 저녁에 출근길에 오르던 그때 그 시절. 그러니까 대강 십 년 전 나는 술집 여자였다. 내가 그렇게 되었던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가난하여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제 와 말하자면 실패한 첫사랑. -잘못 사귄 친구들 핑계를 대기에는 서른 살을 바라보는 내 나이가 너무 창피하다. 아무튼 그때 나는 그렇게 아무 거리낌이 없었고 더 많은 방종을 위해서는 아무런 간섭도 없는 곳으로 술집이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 남자는 손님으로 만났었다. 한 번은 친구랑 함께 왔던 그 사람을 상대하게 됐다. 옆에 붙어 앉아 술 따르고 애교를 떨었다. 거기 오는 모든 남자에게 그랬듯이. 그날도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들어가자 그가 내게 찝쩍거렸다.
-너 예쁘게 생겼다. 나랑 사귈래? 오빠 돈 많아.
-…….
-여기서 한 달에 얼마나 버는데?
돈이면 다 대는 줄 아는 모양이다. 생각 같아서는 보기 좋게 거절하고 싶었지만 내 직업인만큼 손님에게 예의가 아닌 듯싶어 웃어 버렸다. 술집 여자인 주제에 웬 눈이 그리 높나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손님으로는 별수 없이 대강대강 받지만, 퇴근 후 만나서 가볍게 차 한잔할 정도에도 내 기준에 맞춰 따졌다. 외모도. 매너도. 그리고 느낌도. 내게 대시하고 있는 눈앞에 이 남자. 얼핏 보아도 일 미터 칠십은 훨씬 넘길 것 같은 키에 얼굴도 그만하면 못생긴 건 아니고. 나이도 금방 삼십 정도인 것 같으니까 내 기준에 비해 너무 후진 편은 아닌데 느낌이 별로다. 거들먹거리는 거동이며 목소리며. 암튼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내 유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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