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야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종욱은 내게 악마였다.
산길은 가도 가도 나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 위쪽으로 오르다 보면 시야가 트일 거라는 생각으로 위쪽으로만 올랐다. 그런데, 보니까 길이 더 나아지지는 않고, 험준하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렸다. 날도 어둑해져 왔다. 그제야 나는 내가 길을 잃은 걸 감지했다. 아! 이럴 수가. 괜한 짓을 했구나.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스스로 찾아와서 낭패를 겪다니. 하는 일들이 다 이렇지. 늘. 계획도 없고 기분 내키는 대로.
어떻게든 산을 빠져나와야 어딘지 분간이 갈 것이다.
이제는 날이 완전히 저문 거 같았다. 밤에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별자리를 쫓아 방향을 잡으라고 어느 책에서 본 듯하다. 북두칠성의 옆인가 앞인가, 있는 북극성을 쫓아가면 북쪽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서는 말도 안 되는 거였고 날씨는 우중충하고, 설령 날이 맑더라도 나무숲도 울창하고, 가는 길도 험악한 곳에서 북극성을 찾는다는 거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인지 이슬인지, 척척하게 젖어드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사람들이 자주 다녀서 길이 꼬불꼬불 난 길마저 잃어버렸다. 정말 난처하게도 길이 없었다. 산속에 길을 잃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그렇다고 주저앉아 사태를 좌시하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다. 마냥 어디든 가야만 했다. 마치 지금껏 내쳐 온 내 고교 시절이 이런 막막함과 별달라질 바 없이 교차하여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계획도 없고 정해 놓은 것도 없이 그냥 막 다를 때까지 가는 것이다. 갑자기 종욱 생각이 났다. 만약 그라면 어찌했을까? 그 자식 같으면 이런 산에 올라오지도 않았고 타당성과 비준한 일을 먼저 따질 것이다. 미쳤니? 그럴 시간 있으면 여자 만나는데 시간을 더 투자해. 부질없이 이런 산에 올라올 리가 없었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헤쳐 나오려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내려가는 길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물이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렸다. 계곡이 있다는 증거였고,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존재함을 의미했다. 좀 전과 달리 이상해질 정도로 침착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물줄기를 쫓아가라는 건 교련 시간에 배운 것이 어렴풋하게 잠재의식을 일깨운 거였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동쪽인지, 서쪽인지 방향 분간이 안 간다면 물 흐름을 찾아라. 물줄기를 따라 계속 내려오다 보니 차 소리도 간혹 휙휙 지나갔다. 차 소리에 미치도록 환호성을 지를 뻔도 했다. 어쩌면 남한산성 부근에 이르렀을 수도 있었겠다. 쾌재를 불렀다.
이윽고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부근에 이르렀다. 남한산성이 아니더라도 성남으로 가는 운전자를 만나면 운 좋게 얻어 탈 수 있을지 몰라.
그런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드문드문 승용차가 지나가기는 했어도 이런 험한 산중에서 홀로 걷고 있는 사람에게서 풍겨 오는 자태가 도저히 위험천만하다고 느꼈는지 차는 속도를 늦추는 일 없이 쌩쌩 달려 나갔다. 나무숲을 헤쳐와 지친 모습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그런 상상을 하기에도 쉬운 것이리라. 그런 운전자들에게 도로 한가운데 서서 손짓하고 소리라도 질렀다면 차를 멈췄을까. 혹여 있을지도 모르지. 멈추고 산 아래까지 차를 태워 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남한산성 8km.
안내 표지판은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간 것 같지만, 맥이 풀렸다. 남한산성조차 못 넘은 건지 아니면, 남한산성에서 벗어나 성남 반대 방향인 광주로 걷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머지않아 곧 있을 입대를 생각하면서 비를 출출 맞으며 계속 걸었다. 군대에서는 이보다 더한 길을 거쳐 계속 선임이든, 후임병이고 간에 뒤통수만 보고 걷는다는데. 미리 연습이라 생각해 두자.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은 멈춰 버린 듯했고, 같은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도 가도 아스팔트였다. 차라리 3번 버스가 지나서 온 길을 되돌아 걷는 것이 더 가깝지 않았을까.
순례자의 고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막막했다. 안개비가 흠뻑 적셨다. 걸어도 끝이 안 보일 거 같은 아스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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