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지막 축제. -8, 5. 상대원 블루스. -1

한 때는 시네마천국에 토토처럼 성남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by 이규만

너무나 행복해하며, 여자가 눈을 감고 희열에 젖어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여자와는 너무 동떨어지긴 했어. 이게 뭔가. 그저 그것은 환상이었었나? 이내 움츠러든 성기를 추스르며 여자에게서 벗어났다. 두 발 모으고 팔을 그 위에 걸치고 앉았다. 다리에 머리를 파묻었다. 여자는 나더러 물었다. 벌써 쌌어. 고개를 저었다. 술 마셨어.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냐. 머리를 좌우로 도리질했다. 그러면 왜 그래. 다시 해 봐. 시팔. 첫 개시부터 이게 뭐야. 아유. 재수 없어.

여자는 돌아갔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밖에서는 계속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리를 숙였다. 그곳을 빠져나왔다.


편의점에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는 또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뭐하노? 와 일을 안 하노? 그만 둔기가? 애 아버지예. 와 보소. 야가 일 또만 뒀네배. 모꼬.

그동안 내게 일어난 신상 변화에 비하면 훨씬 작은 일에 불과했다. 그래서 거침없는 어머니의 군소리에도 끄떡도 하지 않고 견뎠다. 며칠 동안을 그렇게 칩거로 보냈다.

한 부분으로 치닫는 정신적 충격은 너무나 컸다. 가슴속은 답답했다. 누군가에게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고 싶었다. 이게 성장 과정에서 한 번씩 통과의례처럼 지나야 하는 아픔일까.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쉬쉬하며 몰래 감추던 비밀이 바로 겨우 이런 것이었나. 수없이 곱씹으면서 고교 시절 자율학습 시간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부활'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때 네휼류도프에게 버림받았던 카츄사를 생각했다. 정말로 카츄사처럼 그 여자도 한 남자한테 버림을 받고 여기로 발을 들인 걸까? 아니면 나처럼 호기심에 치밀어 오는 욕정을 참지 못해 떠밀려 온 걸까? 나와 잠시 살갗이 닿았던 그 여자…. 그 여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이내 미경이를 기억해 내고는 지우려고 애썼다. 미경이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나를 보려고 할까? 더 이상 미경이 앞에 나타나는 것은 죄악이었고 그녀는 이 사실을 내가 고백한다면 나를 외면하려 들 것이다. 뒤로 돌아섰다가 급기야는 욕을 하고 소리칠 것이다. 더러워. 깨끗하지 못한 영혼으로 어떻게 그녀를 볼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아니다. 이것은 정말 아니었다.

편의점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때의 나의 정신 상태를 피력한다면 낯선 여자와의 성 경험이 가져다준 일말의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썩은 찌꺼기로 가라앉은 영혼으로 미경이를 만난다? 도저히 나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나와 결혼할 여자 -그 여자가 미경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두 -한 테 신혼 첫날밤에 그럴지 모른다. 네가 처음이야. 혼전순결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덧붙인다던가, 굳이 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서 내가 고결한 척, 순결한 척할 것이다. 먼저 말하기 전에 여자가 먼저 저는 승동 씨가 처음이 아니에요. 경험이 있는 여자예요. 죄책감에 사로잡혀 고백해 온다면 나는 불같이 성질을 낼 것이다. 당장 이 결혼은 무효야. 상황이 어떻게 돌변은 할지는 모르지만, 아마 나는 거의 그때 가서 화를 내고 결혼을 무효라고 말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종욱한테 했다면 그는 아마 그럴 것이다. 아직도 혼전순결을 주장하는 남자들이 많은 것 같은 데 그 많은 남자 중에 바로 내가 포함된 것이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말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현재의 마음 상태가 중요한 것이지. 얼마만큼 감정에 충실하며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남자는 다른 여자와의 성관계를 인정하면서 자신과 결혼할 여자는 절대 다른 과거의 남자와의 성관계를 계속 부정하고 부인한다면 그와 같은 모순도 없을 것이며,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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