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내에세 연애는 불가결한 이야기인가. 사툴기만 하다. 답답하고.
월급에 대한 부분이라든가, 휴일에 관한 대안을 더 내가 놓았더라면 바람이 더 컸었다. 한 날에 다 같이 쉬지 못하고 돌아가며 쉬는 날을 나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다른 동료들 눈치를 봐야 했었다.
자재과에 내려가 담당 직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원자재는 어음으로 결제해 주고 점포에 점주들한테는 현금으로 돈을 받아 오는 형식을 취해 종업원들의 급여와 건물 유지비를 메워 자금난은 어느 정도 모면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재과 직원도 불안한 회사 운영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궁리하고 있었다. 재료를 가지러 자재과에 가면 가끔 물건을 챙겨주던 사업부 소속의 직원이 내게 말해 주었다. 어디가 좋을까. 승동아. 그를 보면서 기혼자들만이 흔들리지 않고 이 회사를 이끌고 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한 점은 아직 전통이 수립되지 않은 P 크루아상의 맹점이었다. 시행착오의 일부분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사실 그랬다. 밀려드는 일거리가 나로서도 너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침마다 작업장에 오면 버터크림과 시트 쪼가리를 쌓아두고 수없이 만지작거려야 할 일들이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이내 금방 질리고 말았다.
시트에 시럽을 자동으로 발라주는 기기가 새로 들어왔다. 작업장이 협소해지고 공간이 점점 좁아졌다. 공장이라 이사 와서 넓은 작업장이라 생각이 들었는 데 갈수록 많은 물건이 들어오니까 전에 일하는 곳이나 마찬가지로 별다를 게 없어졌다.
전 계장이 시럽 분사기의 벨트를 만지작거리고 조였다. 전에 들어왔던 기계였는데 들여올 공간이 되질 않아 공장 외 다른 창고에 묵혀두었다니까. 이 아까운 걸 못 써먹으니 얼마나 안타까워.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 쓰려고 준비한 야심작이야.
몸집이 너무 컸다. 작업장에 들여놓을 때도 전 계장과 공무과 직원 여럿이 와서 작업장에 밀고 들어와 설치해야 할 정도였다. 부수적인 기기 –컨베이어 -를 제외하고라도 길이로만 2 미터가 넘는 것 같았다. 폭은 일 미터 정도 되고. 정 가운데에 훤히 비추는 사각 플라스틱 통을 놓아 내부 안이 보였다. 아래로는 여러 가지 센서 장치도 보이고 전기모터가 묵직하게 하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계는 바인더같이 바퀴는 전혀 없었다. 믹싱기처럼 무게가 한몫했다고 여겼는지 고정식이었다. 아직 명칭도 전문적인 용어로 정해지지 않았다. 임시로 ‘시럽 분사기’라 불리었다.
전 계장이 시트 하나를 슬라이스 해 온 것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시럽 분사기 옆에 있는 스위치를 넣었다. 플라스틱 안이 희뿌옇게 막을 형성했다. 플라스틱 안 쇠막대에 달린 노즐에서 줄기차게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 아래로 시트가 컨베이어 타고 흘러갔다. 빵을 보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서 제작된 거라지만 작업장 내에서 처음으로 보는 시연 가동이었다. 전 녹중 계장은 만족스럽게 기계를 쳐다봤다. 그렇지만 김종필 기사는 옆에서 고개를 저었다. 한두 개는 모르겠지만 대량으로 만들 때 저게 가능할까. 에이. 김 기사님. 저희 다른 기계도 주문 제작 중이에요. 아이싱 기계도 만들어서 나왔어요. 아직 시험단계라 공장 안에는 들여오지는 않았지만요. 점점 더 공장화되어가는 거죠. 대량생산.
기계를 보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제윤 주임도 그렇고 김창식 기사나 생크림 반의 최정근 주임도 어렴풋한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반기는 이는 없었다. 나도 기계를 바라보니까 수심이 가득 차올랐다. 여러 번 공무과를 부르고 말썽을 불러일으킬 것을 짐작했다.
마치 전 녹중 계장의 입김으로만 제작된 생산 라인의 물품같이 보였다. 기계는 가동이 되고 나서 만족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역시 그 라인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니까 문제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가장 문제는 노즐이었다.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럽 농도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했다. 설탕물 농도가 너무 올라가면 노즐이 아예 막혀 나오지도 않았다. 설탕물을 약하게 하면 케이크 맛을 지대하게 좌우하는 당도가 많이 떨어진다. 시럽을 끓일 때 설탕 넣는 레시피가 있다. 그런데 노즐 부분이 안 막히게 하려면 농도를 약하게 하여야 하는데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레시피는 지켜야 하고 그대로 하다 보면 노즐이 막힌다. 분사되는 구멍을 크게 열면 압력부에 해당하는 센서 부분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시트도 시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크림이 바를 수 없을 정도로 못 쓰게 된다. 기계를 제작하면서 돌릴 때는 노즐에다가는 집중을 안 했을 것이다. 설탕물을 따로 끓여서 매번 하기도 귀찮아했을 것이고. 맹물로만 해서 기계를 돌렸을 것이다.
기계는 또한 청소할 때가 가장 문제였다. 시럽으로 온통 바닥이 끈적일 때 닦아내야 하는데 바퀴가 없어서 기계 주위만 닦아내서 기계 안쪽은 빵 찌꺼기로 쌓였다. 세심하게 생각했다면 안쪽은 아예 막아 놓거나 분리가 쉽게 되게 해 놓았을 일이었다.
시럽 분사기 때문에 6층 옥상 공무과에 올라갈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노즐이 또 막혔어. 젠장. 그냥 붓으로 칠하면 안 되나.
시럽 분사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이었다. 상준을 바라봤다. 같은 연배 감을 느낄 수 있는 상준에게 지나치리만치 기대었나 보다. 그에게 술을 한 잔 멋지게 사고 싶었다. 오랜만에 일이 돌아가는 걸 보니 일찍 끝날 기미가 보여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일찍 이래 봐야 저녁 일곱 시이지만 여덟 시에 끝난 것보다는 나았고 아홉 시에 끝난 것보다는 나았다.
“오늘은 술 한잔하러 갈까? 어머니한테 용돈도 탔는데 말이야. 내가 한 잔 사지 뭐.”
“정말이야? 형?”
“그래. 그러자꾸나.”
그때 마침 진숙이 케이크를 디자인하다 아이싱을 도와주러 가까이 왔다. 육천 원짜리 링 케이크는 단가는 낮았지만, 잔손질이 많이 가기 때문에 디자인하는 쪽은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하였다. 거기다가 일을 잘하는 진숙이었으니 도와주려는 것이 역력하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진숙이가 자신이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들을 더하여 동료들을 아주 편하게 해 주려는 것을 종종 느끼고는 하였다. 그런 진숙에게 곧잘 웃는 표정으로 상준이 다가섰다. 한참 벼르다가 겨우 꺼낸 말 같았다.
“진숙 씨. 승동이 형이 술 한 잔 산다는데 우리 같이 가자. 애숙 씨한테도 같이 가자고 할 테니 어때?”
진숙은 믿기지 않은 듯 기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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