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정말 싫어. 속으로 애끓은 잡념만 무더기로 쏟아내는 곳 -
그러니 당연히 밤낮이 바뀔 수밖에. 낮에 형수한테 부탁해서 가져온 카세트 라디오가 있어 다행이었다. 밤이 내리고 병실 밖으로까지 '포트레이트'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퍼졌다.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 난데없는 감상에 젖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새벽녘이 훨씬 지나서야 스르르 잠이 몰려들었다.
며칠은 통증이 가라앉지 않을 테니 정 아프면 말해요. 간호사한테 진통제를 부탁하면 놓아줄 겁니다. 나를 수술해 주었던 의사가 종종 나를 보러 왔다. 주사는 정말 싫었다. 안 그래도 팔에 맞는 수액 주사 두 병과 매일 꼬박 먹는 세끼 밥처럼 간호사 앞에서 까발려서 맞는 엉덩이 주사까지 합하면 다섯 번이나 맞으니 남아나질 않는 것 같았다. 바늘로 찌른 멍 자국이 시퍼렇게 남았다. 주사 자국이 여기저기 있고 살이 퍼렜다. 통증으로 오른손을 가누지 못해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정말 통증이 대단했다. 싸한 것을 짓이기는 느낌이었다. 콘크리트에다 상처 부위를 헝겊 하나 대지 않고 계속 비비는 느낌이랄까.
차츰 통증이 가라앉고 수액 주사도 한 병으로 줄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어도 회사 동료들이 몇 명씩 문병을 왔다 가며 위로해 주었다. 빨리 나아서 같이 다시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네가 없어 빈자리가 허전하다. 나와는 별로 친분이 없던 호철까지 상준이와 함께 와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때면 곤욕을 치렀다.
노조위원장이 왔을 때는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금방 나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 사람의 운명이란 때로 부딪치기 싫은 상태로 있다가 맞닥뜨려질 때가 있으며 그 과정을 슬기롭게 넘기다 보면 조금씩 인생이란 것을 알게 된다. 자학하지 말고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부상시키고 그 중요성을 잊지 말라고. 그는 말하는 내내 신신당부하듯 억양이 좀 높았다. 가장 나약해질 때는 아프고 병들어 있을 때가 아닌가. 그래. 속병을 앓는 것보다 외적으로 다친 것이 낫다고 생각해. 그의 말로 위안 삼으려 해도 갑자기 내게 닥친 정신 내부로 향한 상처는 치유할 수가 없었다. 노조위원장 말대로 나의 존재 -적어도 다치기 이전까지는 가족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두루 건사한 희망적 존재였다. -를 부상시키려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먼저 입원해 있던 사내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잘했나 보네. 많이들 오고 가네.”
곧 그 말은 ‘여지까지 대인관계를 잘했구나’로 들렸다. 사실 나는 잘한 것이 없었다. 그저 문병 오는 동료들이란 강압감에 몰려 억지로 쏠려 오기 마련이었다. 그런 동료들에게 그저 화만 내고 신경질을 부리다가 제풀에 못 이겨 후회만 했을 뿐.
내가 있던 병실에 환자가 또 한 사람 늘었다. 집을 새로 짓는 건축 현장에서 벽에 못질하려 보호 각목에 올라서다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앞으로 떨어졌는데 두 팔의 뼈가 부러졌어. 붕대로 칭칭 감은 상태로 육 개월 동안 뼈가 붙을 때까지 석고를 대야 한대. 노인은 아내가 아침에 조금만 늦게 오면 무척 화를 냈다. 두 팔을 그렇게 다치고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용변을 볼 때도 그렇고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심지어 잠잘 때는 바로 누워서 잘 수밖에 없으니 내가 보기에도 무척 답답해 보였다. 노인도 가끔 나처럼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대부분 건축일로 먹고사는 목수장이나 미장이들이었다. 그들의 시커먼 얼굴이나 복장을 보니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막일하는 건축일이라서 산재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며칠 있지도 않고 퇴원해 버렸다. 세면을 하거나 용변을 볼 때 노인을 생각하며 매일 오른손이 하던 일을 왼손이 하게 되어 서투르기는 해도 한 손이라도 제대로 있다는 것에 감격해하고 감사했다.
병원에 계속 있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통원치료를 할까 보다. 것도 상관은 없어요. 간호사한테 물어봤다. 링거는 손가락붕대를 풀 때까지는 계속 맞아야 할걸요. 두 시간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고요. 서서 맞을 수는 없잖아요. 잠자리만 집일 뿐이지 시간 보내는 것은 통원 치료나 입원 치료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불편한 모습으로 계속 가족 눈치를 보는 것도 부담이었다. 특히 어머니를 보기가 힘들었다.
그저 병원에서 보내다 퇴원하는 것이 제일 상수였다. 병원에서 주는 세끼 밥 먹고 퍼 자고 가끔가다 회사 동료나 가족이 오면 반기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얼마간은 아무 일도 못 할 것이라는 걸 궁색하게 표를 낼 필요는 없었다.
다친 날 이후 오래간만에 형수가 찾아왔다.
“이제 좀 어떠세요? 도련님. 이제 좀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네. 나아진 것 같아요. 마취가 풀리면서 굉장히 쓰라렸는데 이제는 좀 괜찮네요. 손가락 붕대도 이제 작은 것으로 줄어들고.”
“적적하시죠? 제가 자주 들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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